"법치주의의 가장 큰 왜곡은 '악법도 법'"

김지형(53ㆍ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 23일 예비법조인 대상 특강에서 "독재자들이 흔히 외치는 구호 중 하나가 법치주의"라고 지적했다.

김 전 대법관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형사법과 법치주의'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법의 지배를 뜻하는 법치주의는 사람의 지배를 지양하는데서 시작했으나 흔히 이를 주어가 생략된 '법에 의한 지배'와 혼동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법에 의한 지배는 '인간의 지배'의 한 형태일 뿐"이라며 "중국에서 한때 법가 사상이 유행했듯이 독재자들이 어찌 보면 법치주의를 더 많이 외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법치주의의 가장 큰 왜곡은 '악법도 법'이라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하는데 악법도 법이라면 '법의 지배'를 '법에 의한 지배'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죄추정, 독수독과(毒樹毒果ㆍ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한 2차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 등 형사법 공리(公理)에 대해 "단순히 형사법 원칙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가 지향할 민주주의적 질서의 토대"라며 "이런 공리를 관통하는 인간 존중 원칙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전 대법관은 "독수독과 원칙을 당연히 여기는 요즘에도 불법사찰 등이 행해진다"며 "그런 사회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법관 재직 당시 박시환ㆍ전수안ㆍ이홍훈ㆍ김영란 대법관과 함께 진보성향의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던 그는 "적어도 형사법 영역에서 나는 엄격한 보수주의자"라며 "처벌 조항에 관한 한 철저히 자구에 충실해야 혹시 발생할 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 전 대법관은 판사 재직 당시 사회적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여럿 남겼으며 지난 7월 법복을 벗었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