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증시 '원화 저주'로 일본 전철 밟나
최근 들어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연일 올해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빠르게 절상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처럼 ‘원화 저주’에 걸려 한국 증시가 ‘일본화(Japanization)’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어 앞으로 원화 환율 움직임이 더 주목되는 때다.

‘안전통화 저주(curse under safe haven)’란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처음 주장한 용어다. 다른 가격변수와 달리 통화 가치는 교역국과의 교환 비율이기 때문에 해당국의 경제실상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경제 여건과 통화 가치가 따로 놀면 저주가 될 만큼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경제다. 침체되는 경제 여건을 반영한다면 엔화 가치는 약세가 돼야 한다. 그래야 수출경쟁력이 강화돼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가격변수의 조정 기능(price mechanism)이다. 하지만 잇단 위기로 엔화는 안전 피난처로 인식되면서 수요가 급증해 초강세를 보임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가 더 곤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증시 '원화 저주'로 일본 전철 밟나
이달 들어 ‘원화 저주’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원화 강세가 한국의 경제 여건으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외환보유액, 국가신용등급 상향 등 내부적으로 원화 강세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침체되는 경기를 반영한다면 원화 가치는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주로 대외적인 요인 때문에 원화 가치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3차 양적완화다. 이 정책 추진 이후 달러 가치는 뚜렷하게 약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 동향을 알 수 있는 달러패리티지수는 한때 85에 이를 만큼 강세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78까지 떨어졌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절상되는 것도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최소자승법 등으로 위안화와 원화 간의 동조화 계수를 구해보면 0.57로, 위안화 가치가 1% 절상되면 원화 가치도 0.57% 오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동일한 방법으로 추정된 엔화와 원화 간의 동조화 계수 0.02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올 하반기 이후 환율 등 글로벌 가격변수 결정에 영향력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대형 헤지펀드들의 ‘ABCD’ 투자전략도 원인이다. A는 ‘아시아 투자(Investment in Asia), B는 ‘핵심 업종 투자(Bluechip Investment)’, C는 ‘경기순환적인 투자(Cyclical Investment)’, D는 ‘투자 다변화(Diversification of Investment)’를 뜻한다. 이 전략의 최적지로 한국이 지목되면서 이들 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경제 여건과 관계없는 원화 절상이 우리 경제에 저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뒤늦더라도 외국 자금의 유입 속도를 조절(smoothing operation)해야 한다.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해 대내외 금리 차를 축소하거나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환거래세(two way Tobin tax system)’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외자 이탈에도 대비해야 한다. 가장 보편적인 대책은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확보해 놓는 일이다. 현재 우리 외환보유액은 3100달러가 넘는다. 통화스와프 협정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보한 제2선 자금까지 포함하면 4000억달러가 넘어 이 대책은 안정 궤도에 들어선 것으로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사전에 외국 자금의 이탈 징후를 포착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안정성과 정책효율 면에서 더 중요한 대책이다.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외자 이탈의 사전 대책으로 다양한 방안이 나왔지만 과거 위기 발생국들의 공통적인 경로를 토대로 볼 때 신호등 체제를 활용한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외환당국에 제안한다. 일단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각종 위기 관련 프리미엄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거짓 신호’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파란불(경고 Ⅰ)’을 켠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증시 '원화 저주'로 일본 전철 밟나
그 뒤CDS 프리미엄이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두 배로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이 줄어들면서환율 변동이 심하거나 상승세를 보이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꾼다(경고 Ⅱ). 상황이 더 악화돼 CDS 프리미엄이 장기 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네 배로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 규모가 장기 평균치에 비해 두 배 이상 감소하거나 순유출세로 바뀌고 환율이 급등세로 돌아서면 ‘노란불’에서 ‘주황불’로 한 단계 격상(경고 Ⅲ)시킨다.

최종 단계로통화 절하폭이 직전 연도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확대되고 외환보유액이 감소하면서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주황불’에서 ‘빨간불’로 전환(경고 Ⅳ)한다. 위기 경험국의 사례로 볼 때 ‘경고 Ⅲ’ 단계에 가면 그때서야 국민이 ‘경제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런 만큼 늦어도 ‘경고 Ⅱ’ 정도에서 이를 알아낼 수 있다면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신호등 체제를 활용한 조기경보체제는 예비적인 성격이 강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엄청난 비용과 고통이 따르고, 위기를 극복한 후에도 오랫동안 낙인효과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체제를 도입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운용할 것을 제안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