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해운사 현대상선과 주방가구 전문업체인 에넥스가 대규모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에 나선다. 업황 불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탓이다.

이번 유증에 대한 시장 반응은 정반대다. 현대상선은 오버행(물량부담) 우려에서 벗어나 반등했고, 에넥스는 여전히 급락 중이다. '잔액인수 계약' 여부가 주가행보에 일정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전날 장마감 후 공시를 통해 2100억원대 증자를 결의했다. 주주배정 이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다. 증자의 주관은 대신증권이 맡았다. 최종 실권주는 모두 잔액인수 될 예정이다.

잔액인수는 청약물량이 일반공모 배정분 주식 수에서 미달하는 경우, 주관사와 인수회사가 '개별 인수의무 주식수'로 나눠 인수하는 방식이다. 미리 계획해둔 운영자금을 차질 없이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금융비용은 든다.

에넥스는 반면에 잔액인수 방식을 포기했다. 실권주 일반공모 후 잔여주식은 미발행 처리하기로 한 것. 현대상선과 달리 청약 미달 사태가 벌어지면 자금조달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현대상선은 오후 2시11분 현재 전날보다 3.21% 오른 2만5700원에 거래되고 있고, 에넥스는 전날 대비 12.00% 급락 중이다.

대주주의 적극적인 유증 참여도 차이점이다. 업계에선 현대상선의 경우 지분 24%를 보유중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신주를 배정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인데 이것이 현대상선 신주를 받아내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에넥스는 최대주주인 박유재 회장(약 25%) 및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 지분이 모두 33% 가량. 이에 따라 대주주의 신주 배정 규모는 약 33억원인데 이 회사 대주주는 절반 수준인 15억원 정도만 청약에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윤 동양증권 책임연구원은 "일반공모 방식의 증자를 대규모로 진행하면 기존 주주들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대주주도 참여하는 주주배정 증자로 이뤄진다"며 "다만 이는 은행 대출 및 회사채 발행 등도 쉽지 않은 경우에 실시하는 고육책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장기업의 대주주는 일반적으로 여윳돈이 없으므로 기존 보유주식을 담보로 대출은 받은 뒤 예정된 청약 물량의 절반 수준에서 증자에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이 경우에도 나머지 절반의 물량은 청약 미달로 간주해 잔액인수 방식의 증자 주관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