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서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의 실적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7일 오전 10시50분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60원(0.23%) 떨어진 1104.60원으로 닷새째 하락하고 있다.

환율은 최근 저항대로 여겨졌던 1110원대를 하향돌파하더니 이날은 장중 1103원대까지 떨어지며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해 6월 이후 4개월여간 원·달러 환율은 1180원대에서 1100원대 초반까지 6.3% 떨어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 같은 원화 절상은 미국과 유로 중심의 유동성 확대정책 및 동남아시아 주식시장 호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무역수지 흑자기조 지속, 국가신용등급 상향 및 외국인의 추가 정책금리 인하 기대감을 반영한 국채 순매수 기조 등의 영향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 위안화가 절상되면서 아시아 통화들도 전반적으로 절상 압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가장 먼저 우려되는 것은 국내 수출기업들의 실적과 경쟁력이다.

박중섭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구간에서는 기업실적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는 경향이 있다"며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원화 강세에 따른 가격 경쟁력까지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국내 수출기업들의 향후 실적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원화가 1100원 아래에서 수 년간 머물렀던 2004~2007년에는 기업실적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원·달러 환율보다는 원·엔 환율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과의 상대적인 경쟁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용현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엔환율이 100엔당 1000원을 하회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이익성장이 신흥시장 평균을 밑돌았으나 지금은 1400원대"라며 "원화강세가 수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수출경쟁력 약화를 본격적으로 논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악재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원화 강세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을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통화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출 호조와 펀더멘털(기초체력) 개선 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원화의 경우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경기가 호황일 때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과거 미국의 양적완화(QE)로 원화 가치가 상승했던 구간에서의 업종별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예상과 달리 화학, 철강금속, 운수장비, 전기가스, 운수창고 등 수출 비중이 큰 업종들이 강세를 보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용현 애널리스트도 "2000년 이후 살펴보면 원화 가치의 본격적인 강세 국면에서 주식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도 본격적으로 상승했다"며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통화강세는 긍정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