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품 연극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2012 세계국립국장페스티벌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올해 6회째인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은 세계 각국의 국·공립극장을 대표하는 공연과 국내의 우수 작품을 초청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국제공연예술제. 오는 28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 이번 축제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 할 작품 두 개를 꼽았다.

참가작 중 최고 수작으로 꼽히는 연극 ‘블랙 워치’와 슬로바키아 최고 연극상을 받은 연극 ‘인간 혐오자’다. 둘 다 현대사회의 위선과 상처를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 ‘블랙 워치’가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한 직구라면 ‘인간 혐오자’는 위선과 부패로 물든 현대사회를 비트는 변화구 같은 작품이다.

○연극 ‘블랙 워치’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을 대표하는 연극 ‘블랙 워치’는 평단과 관객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수작이다. 뮤지컬 ‘원스’로 연극·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에서 8개 부문을 휩쓴 존 티파니가 연출을 맡았다. 2004년 스코틀랜드군의 이라크 파병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이라크전쟁에 참여했던 퇴직 군인들을 인터뷰해 썼다. 제목이 된 ‘블랙 워치’는 300년 역사를 지닌 스코틀랜드 특공부대다.

2006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초연 때 호평을 받고 영국 최고 공연예술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우수 연출, 최우수 안무 등 4개 부문을 받는 등 모두 22개상을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미국, 호주 등 각국을 돌며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만났지만 아시아 공연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연극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이라크전쟁에 자원한 스코틀랜드 청년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깨닫는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출연진 12명의 진심 어린 연기가 더해진다.

뉴욕타임스는 “‘블랙 워치’는 모든 장면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전쟁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고 썼다. 현대카드의 8번째 컬처프로젝트로 선정됐다.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3만~7만원.

○연극 ‘인간 혐오자’

슬로바키아 마틴시립극장의 연극 ‘인간 혐오자’는 몰리에르의 5대 걸작 중 하나다. 슬로바키아 최고 연극상인 도스키 어워즈의 최우수 연출, 최우수 장면, 최우수 의상상을 받았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꼬집는 작품. 1999년부터 마틴시립극장과 몰리에르 시리즈를 만들어온 로만 폴락이 연출을 맡았다.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된 미인 셀리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주인공 알세스트를 비롯한 여러 젊은 귀족들이 경합을 벌인다. 셀리멘의 사랑과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배신과 위선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한 개인의 고뇌와 좌절을 읽을 수 있다.

폴락은 “위선과 부패로 물든 현대사회를 도덕적인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주인공이 오히려 희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바로 현대사회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18~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원. (02)2280-4114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