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불확실성 키우는 韓銀의 선문답식 대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저금리가 금융정책 여력줄인다?…시장에 더 큰 불황 예고하는 격
조장옥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조장옥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한국은행법 제1조는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설립목적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임을 천명하고 있다. 지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물가안정만을 설립목적으로 했던 법을 개정해 금융안정을 추가했다. 그 항목을 하나 더 넣기 위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를 각각 관할하는 국회의 두 개 상임위가 한 쪽은 추가하자는 쪽으로, 다른 한쪽은 반대하면서 서로 대립하다가 원래 안보다 크게 약화시켜 추가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많은 나라에서 중앙은행의 설립목적은 물가안정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실물경제적인 사항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가 목표로 하는 것은 ①고용의 극대화, 물가안정,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안정적인 장기이자율의 유지 ②은행과 금융제도의 건전성 유지를 위한 감독과 규제 ③금융안정 ④예금금융기관, 정부, 외국기관 등을 위한 금융 서비스의 제공 등 매우 광범위하다. 이에 비하면 우리 중앙은행의 역할은 왜소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할 것이다.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안정에만 한정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자유화·개방화와 함께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금융정책의 역할을 지나치게 한 목적에만 묶음으로써 금융정책이 가지는 다양한 다른 목표를 간과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한계를 갖는다. 미국의 Fed와 비교해 우리 중앙은행의 위상은 한마디로 연민을 느끼게 한다. 금융안정 조항이 삽입되기 이전에 한국은행은 독자적으로 금융회사에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할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은행이 금융회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권리도 없이 금융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위태로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나치게 왜소화되고 주변화돼 있는 현실이 중앙은행의 위상과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나라의 금고지기 정도로 이해하는 위정자들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한국은행의 정책행위는 지나치게 물가안정이라는 명시적인 목표에 스스로를 얽매는 것은 아닌지 의아할 때가 자주 있다. 지난 9월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내년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9월 콜금리를 내리지 말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이 나라의 성장률이 3%대, 그리고 이제 2%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와중에 내년의 물가 때문에 혹독한 불황에도 콜금리를 현상유지하자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학식이나 생각이 아주 깊은 준법주의이고 나쁘게 말하면 대단한 용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중앙은행은 시장, 그리고 일반대중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점은 이 같은 괴리가 좁혀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금통위의 금리인하 결정을 발표하면서 한은 총재는 선제적 대응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대해 누누이 강조했다. 이달의 금리인하가 경기하락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것이고 이제야 그 같은 대응이 일반대중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지 않을 확신이 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금리인하가 선제적이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몇 달 전에 지금보다 더 높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결국 실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저금리가 금융정책의 여력을 감소시킨다는 주장 또한 한국은행이 할 것이 못 된다고 본다. 경기가 얼마만큼 하락할 때까지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서 정책여력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경기상황을 놓고 볼 때 이보다 답답한 선문답이 어디 있는가. 지나친 저금리가 좋지 않은 부수효과를 갖는다는 점을 십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의 0% 정책금리가 정책여력을 확보하지 못한 그들의 중앙은행이 무지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금융정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 것이다.
정책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금리 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중앙은행이 일반대중에게 더 큰 불황이 앞으로 올 것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리는 기대효과가 있다. 나아가 정책의 실기가 이어지면 한국은행의 신뢰성이 하락하고 정책 자체가 경제를 불안정하게 할 가능성마저 나타나게 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장옥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많은 나라에서 중앙은행의 설립목적은 물가안정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실물경제적인 사항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가 목표로 하는 것은 ①고용의 극대화, 물가안정,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안정적인 장기이자율의 유지 ②은행과 금융제도의 건전성 유지를 위한 감독과 규제 ③금융안정 ④예금금융기관, 정부, 외국기관 등을 위한 금융 서비스의 제공 등 매우 광범위하다. 이에 비하면 우리 중앙은행의 역할은 왜소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할 것이다.
ADVERTISEMENT
한국은행이 지나치게 왜소화되고 주변화돼 있는 현실이 중앙은행의 위상과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나라의 금고지기 정도로 이해하는 위정자들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한국은행의 정책행위는 지나치게 물가안정이라는 명시적인 목표에 스스로를 얽매는 것은 아닌지 의아할 때가 자주 있다. 지난 9월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내년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9월 콜금리를 내리지 말 것을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이 나라의 성장률이 3%대, 그리고 이제 2%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와중에 내년의 물가 때문에 혹독한 불황에도 콜금리를 현상유지하자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학식이나 생각이 아주 깊은 준법주의이고 나쁘게 말하면 대단한 용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중앙은행은 시장, 그리고 일반대중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점은 이 같은 괴리가 좁혀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금통위의 금리인하 결정을 발표하면서 한은 총재는 선제적 대응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대해 누누이 강조했다. 이달의 금리인하가 경기하락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것이고 이제야 그 같은 대응이 일반대중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지 않을 확신이 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금리인하가 선제적이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가 몇 달 전에 지금보다 더 높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결국 실기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ADVERTISEMENT
정책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금리 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중앙은행이 일반대중에게 더 큰 불황이 앞으로 올 것이라고 보고 있음을 알리는 기대효과가 있다. 나아가 정책의 실기가 이어지면 한국은행의 신뢰성이 하락하고 정책 자체가 경제를 불안정하게 할 가능성마저 나타나게 됨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장옥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