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다른 나라엔 벌써 있는 특허인데…세금 잡아먹는 특허R&D 싹 걸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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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 기술동향조사
중복사례 꼼꼼히 체크…작년 예산 4000억 절감
중복사례 꼼꼼히 체크…작년 예산 4000억 절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가정용 쌀 제빵기 기술을 국산화하겠다며 제조공정 및 쌀빵 발효균 등 첨가물 연구·개발(R&D) 중장기 계획을 올해 상반기 세웠다. 그러나 특허청 R&D특허센터의 ‘특허기술동향조사’ 결과 일본 산요가 제조 및 부품에 대한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센터는 이 연구과제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국산화 계획을 전면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주먹구구식 R&D에 방향을 제시하는 특허기술동향조사의 효과다. 이 조사는 정부 등이 제출한 R&D 과제 목표와 관련한 선행 특허를 분석해 해당 과제를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권병기 R&D특허센터 정부R&D 특허기술동향조사그룹장은 “연구자들이 동일한 기술이 널려 있는지도 모르고 과제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이런 과제가 그대로 진행되면 끝나봤자 로열티만 해외에 지급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특허기술동향조사는 16개 부처 4424개 R&D 과제에 적용됐다. 서울대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이 조사로 지난해 약 4505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봤다. 또 특허기술동향조사가 적용되지 않은 사업에 비해 우수특허 창출 가능성이 1.44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허청은 이에 따라 정부 R&D 과제 기준 올해 56% 선인 특허기술동향조사 실시율을 내년 70%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장기적으로 전 부처의 모든 과제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식경제부의 ‘세계시장 선점 10대 핵심 소재’ 개발 사업도 이 조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 사업은 전자파 차폐 성능이 뛰어난 나노급 카본(탄소) 복합체를 만드는 게 목표다. 당초 차폐 성능 목표치로 60데시벨(dB)을 잡고 ‘세계 최고 수준 성능’을 표방했다. 그런데 특허기술동향조사를 해보니 일본이 이미 70dB급 카본 복합체를 만들어 특허를 등록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R&D특허센터는 목표치를 80dB로 올리고, 카본 구조를 차별화할 것을 요청해 받아들여졌다.
이 사업은 현재 LG화학을 비롯해 35개 산·학·연이 참여해 2018년까지 원천기술 개발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사업 중 상당수도 이 조사를 통해 옥석이 가려진다. 모 중소기업은 발냄새 제거용 통기성 강화 기능성 신발 과제를 7억원에 신청했다가, 센터의 조사 결과 유럽연합(EU)에서 관련 특허가 이미 다수 등록됐다는 점이 밝혀져 거절당했다.
김호원 특허청장은 “정부 R&D 기획 단계부터 특허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고 양질의 R&D 성과물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