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평화상 수상자로 EU를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출범 60년이 된 EU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나뉘어진 유럽국가들을 하나로 묶고 유럽의 평화와 화합, 민주주의,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노벨상은 생존자 개인에게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평화상은 기구나 단체에도 수여할 수 있다. 1901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들에 여러 차례 수여됐다. 가장 최근인 2007년에는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받았다. 2001년엔 유엔이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과 공동수상했고,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는 1954년과 1981년 두 차례 상을 받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2005), 유엔평화유지군(1988), 국제노동기구(ILO·1969), 유엔아동기금(UNICEF·1965) 등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운동기구인 국제평화국(IPB)은 1910년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국경없는의사회(MSF·1999)와 국제앰네스티(AI·1977) 등 민간단체들도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특히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1917년과 1944년, 1963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평화상을 받아 최다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올해 수상자인 EU는 1993년 11월1일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유럽 12개국이 참가해 출범한 정치·경제 연합기구다. 현재 회원국은 27개국이다.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하는 회원국은 17개국이다. 내년 7월 크로아티아의 가입이 예정돼 있어 회원국은 28개국으로 늘어나게 된다. 평화상을 수여하는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EU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부터 시작한다. 6000만명 이상이 사망한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뒤 유럽에서 더 이상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 탄생했다. 1951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결성한 것이 모태였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COM)가 결성되면서 ECSC와 더불어 유럽통합의 세 축이 마련됐다. 이들 3개 공동체가 합치면서 1967년 유럽공동체(EC)가 만들어졌다. 이후 경제·통화·정치 통합을 골자로 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된 것을 계기로 지금의 EU가 출범했다. 1996년 통화동맹, 1998년 유럽중앙은행(ECB) 설립을 거쳐 2002년 유로화가 정식 유통되기 시작했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번 수상에 “역사상 가장 큰 중재자(peacemaker)로서 EU의 역할을 인정받았다”며 “평화를 위한 EU의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아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수상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재정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결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외신은 “EU가 재정위기에 허덕이는 데다 세계경제 침체의 한 축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평화상 수상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영국의 보수정당인 영국독립당 당수 나이젤 파레이즈는 “완전히 망신이라고 생각한다”며 “노벨평화상이 오명을 썼다”고 말했다. 마틴 콜레넌 유럽의회 의원도 “EU에 평화상을 줌으로써 다른 받을 만한 사람들의 수상 의미만 격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러시아 인권단체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대표 류드밀라 알렉세예바도 “이란의 정치범들에게 평화상이 수여됐다면 이해할 만했을 것”이라며 “EU의 평화상 수상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노벨평화상의 상금은 120만달러다. 시상식은 오는 12월10일 오슬로에서 열린다.

강동균/고은이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