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동네에 먹거리 많다" 속고 속이는 사기꾼 득실
대한민국 대표 부촌인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3개구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경제범죄는 뭘까.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차리고 간판을 내거는 것만으로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경제1번지’ 강남의 이면에는 ‘사기의 천국’이라는 그늘이 상존하고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최근 5년(2008년~2012년 6월) 동안 집계한 사기 사건 24만252건 가운데 5만2605건이 강남3구에서 발생했다. 자치구 3곳에 서울시 산하 25개 자치구 전체 사기 건수의 21.89%가 몰린 것이다. 강남경찰서 관내가 2만4285건으로 1위를 차지했고 △서초경찰서(2위·1만9483건)△수서경찰서(4위·1만2472건) △송파경찰서(5위·1만1997건)가 뒤를 이었다. 방배경찰서는 4368건으로 10위권 밖이었다.

◆수익 좇는 부동자금 넘쳐나…투자 사기 극성

사기 사건 대부분은 투자 관련 사건이었다. “A룸살롱에 투자하면 수익금을 나눠주겠다” “해외 자원 개발에 투자하면 수익금을 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은 뒤 투자금을 챙겨 잠적하는 게 대표적인 수법이다. 이 같은 사기 사건은 2008년 이후 해마다 급증했다.

강남경찰서는 2008년 4681건에서 지난해 5437건으로, 송파경찰서는 2008년 2112건에서 지난해 2868건, 수서경찰서는 2008년 2033건에서 지난해 3102건, 방배경찰서는 2008년 755건에서 지난해 1154건으로 발생 건수가 증가했다. 서초경찰서만 2008년 4461건에서 지난해 3962건으로 소폭 감소했을 뿐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두루 살펴봐야 하지만 그만큼 강남이란 ‘부자 동네’에 ‘먹거리’가 많다는 뜻”이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역인 만큼 사기꾼들에게 더 노출되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 특유의 유흥문화를 악용한 사기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역삼·논현동을 중심으로 발달한 값비싼 유흥주점의 여종업원을 상대로 한 사기 사건인데 지난 7월 발생한 일명 ‘뷰티론(Beauty Loan)’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흥업소 사정에 밝은 한 브로커가 유명 성형외과, 대부업체와 짜고 여종업원 269명에게 엉터리 대출상품을 알선, 27억6000만원 상당의 성형수술을 받게 한 뒤 3억원을 수수료로 챙긴 사건이다.

부유층이 많다 보니 지인에게 선뜻 거액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고소·고발전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차용사기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 고소까지 안 가도 될 건도 수두룩해서 실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는 건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사건 접수는 피고소인 주소지 기준

대기업 본사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사장들이 많이 사는 지역적 특성상 횡령·배임 사건이 다른 곳보다 많이 발생한다. 실제로 강남권에는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역삼동 포스코P&S타워 등을 필두로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기업체 거점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일각에서는 횡령 등 경제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또 다른 이유로 고소인이 아닌 피고소인의 현 주소지를 기준으로 경찰서가 정해지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제주도 소재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이라도 고소하려는 대상이 서울 강남에 살거나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라면 제주도 소재 경찰서가 아니라 서초경찰서에 사건이 접수된다.

또 서울중앙지검·서울중앙지법 등 검찰·법원은 물론 법률사무소가 밀집한 서초동 법조타운이 한데 모여 있는 것도 강남권에서 횡령사건 발생률을 높이는 원인이다. 고소·고발인의 대리인인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서초동 관할 서초경찰서에는 한 해 400건을 웃도는 고소·고발 사건이 넘어온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피고소인의 거주지 기준으로 사건을 배당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더라도 기업체 사장들이 많이 사는 서초구로 사건이 넘어온다”고 설명했다.

◆지능범일수록 ‘강남 스타일’ 강조

금융 다단계 피라미드처럼 제도권 금융회사가 아니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불법 유사수신행위 사건도 자주 발생한다. 이는 유사수신업체들이 사무실은 꼭 강남에 차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변두리에 사무실을 차리면 형편없는 회사 취급을 당할까봐 사무실은 곧 죽어도 꼭 강남에 내려 하더라”고 말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건 발생률도 높은 편이다. ‘대포통장’ 계좌를 강남권에서 개설한 사례가 많아서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해당 지점이 속한 일선 경찰서로 사건이 할당된다”며 “새로운 수법을 앞세운 사기꾼일수록 본사를 강남에 번듯하게 차려놓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전형적인 수법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로 테헤란로 남쪽에 있는 은행 지점에서 많이 개설하는데 접근성이 좋은 데다 유동인구도 많아서 금융 범죄자들의 주 활동무대”라고 설명했다.

박경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이라며 “강남은 상거래와 유동인구가 많아서 경제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선주/박상익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