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 X' 폐쇄적인 천재수학자 류승범 "오타쿠 기질이 용의자역에 딱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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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여인의 살인 숨기려 분투
배우 데뷔 전엔 DJ 활동 몰입…한 분야 열중하는 '마니아 스타일'
배우 데뷔 전엔 DJ 활동 몰입…한 분야 열중하는 '마니아 스타일'
“‘류승범’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캐릭터예요. 석고가 지성인이라기보다는 소외된 인물이란 점에서 끌렸습니다. 천재성이 있지만 세상과 등을 돌리면 루저가 되어버리는, 버림받은 사람이죠. 도시에서 탄생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석고는 어눌한 말투와 꾸부정한 걸음걸이에 수줍은 듯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동안의 ‘류승범 스타일’과는 다르다.
“영화에서 석고의 진심을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배우로서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상 인물을 연기하면서 가끔 ‘내가 이렇게 뻔뻔해도 되나?’하는 죄책감이 들 때가 있어요. 배역이 진솔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죠. 오락영화에서도 배우들은 이런저런 재미를 관객들에게 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석고는 완벽에 가까운 알리바이를 설계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으로 파생하는 또 다른 상황을 미처 계산하지 못한다. 질투에 빠져 파멸로 치닫거나 그것을 뛰어넘어 온몸을 희생하는 사랑의 속성 말이다.
“과연 석고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해봤어요. 석고의 사랑은 거의 종교적인 경지거든요. 제 타입은 아니에요. 하지만 바람둥이는 아닙니다. 사람을 오래 만나는 타입이죠. 확 가까워지기보다는 천천히 가까워집니다. 그런 면에서 석고와 비슷해요.”
자연인 류승범은 기존의 스크린 속 이미지와 다르다. ‘내지르기’보다는 속으로 감추는 타입이다. 배우가 되기 전 음악에 빠져 서울 이태원에서 DJ(디스크자키)로 4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방 감독은 류승범의 이런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적인 면모를 주목해 캐스팅했다.
“영화의 매력은 인간을 성찰하는 휴먼 드라마적 면모에 있습니다. 신파일 수도 있는, 세련된 방식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진심이 있는 영화예요.”
배우 출신인 방 감독은 현장에서 더 엄격했다고 한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커트별로 주문했다. 다른 감독들은 장면 전체의 방향만 주문하거나 그마저도 배우에게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방 감독은 돌다리도 두드리며 장면을 만들어가는 스타일이었다고.
“상대역 이요원 씨에게 깜짝 놀랐어요. 동갑내기여서 더 불편할 수 있는데 첫날부터 아주 털털하더군요. 저는 여배우 울렁증이 있어 잘 친해지지 못하는데 이요원 씨와는 가깝게 지냈어요.”
그는 매년 2~3편에서 주연을 맡으며 쉴 새 없이 달려왔다. 2010년 ‘방자전’ ‘부당거래’ ‘페스티발’, 지난해 ‘수상한고객들’ ‘인류멸망보고서’, 올 들어서는 ‘시체가 돌아왔다’ ‘용의자 X’에 이어 차기작 ‘베를린’ 촬영도 마쳤다. 첩보영화 ‘베를린’에서는 북한 고위 간부의 아들로 출연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