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구본무 LG 회장이 그룹 임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매년 3월과 5월, 7월, 10월에 정기 임원 세미나가 열리는데 9월에 예정에 없던 임시 세미나를 소집한 것. 그룹 내에서 통용되던 ‘3·5·7·10 원칙’을 깬 것은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절박감에서 나온 경영화두는 ‘시장 선도’. 1등을 하거나 판을 바꾸는 기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이 청사진을 실천하기 위해 구 회장은 “모든 임원을 시장 선도 성과로 평가하겠다”며 ‘뉴 LG웨이’를 선언했다.

○‘평범한 기업될까’ 우려

구 회장은 시장 선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고객과 인재가 빠져나가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더 이상 고객과 인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기업으로 남는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실제 10%대였던 LG 휴대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3%대로 떨어지면서 LG 스마트폰의 존재감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핵심 인재들이 다른 회사로 옮긴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구 회장이 “시장 선도 기업에 맞는 보상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조건이 맞지 않아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직원들이 실망해서 LG를 떠나게 하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구 회장이 시장선도론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1박2일 마라톤 토론을 벌인 뒤 “시장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비장한 각오로 임해줄 것도 주문했다.

3월 임원 세미나에서도 “이제 시장 선도는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 됐다”며 “차별화한 제품을 한발 앞서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강한 실행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끝장을 보자”는 말도 자주 했다. 올초 신년사에서 “적당한 시도에 머무르지 말고 될 때까지 끝까지 도전해 달라”고 한 데 이어 3월엔 “한번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열매를 맺을 때까지 집요하게 실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장 선도 실행안 마련

LG는 구 회장이 선언한 ‘뉴 LG웨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시장 선도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사업 책임자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책임경영을 강화할 예정이다. 1등에 가장 근접해 있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TV와 디스플레이에서 선도적 사업자로 도약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연구·개발(R&D)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청사진도 제시했다. 산학 R&D 프로젝트 등으로 맞춤형 채용 프로그램을 늘리고 임원급 대우를 받는 연구위원 처우를 개선할 계획이다. 시장 선도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늘리고 직무 발명 보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계열사별로 시장 선도 방안도 준비했다. LG전자는 지난달 28일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 ‘옵티머스 G’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지난 2분기 북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8%대 점유율로 4위에 오른 상승세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TV 부문에서도 초고해상도(UD) TV와 OLED TV로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해 전체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LG디스플레이는 TV용 대형 패널뿐 아니라 스마트기기용 중소형 패널 강자가 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지난 7월 말 고급 중소형 패널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6세대 라인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LG이노텍은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 시장을 이끌어 호실적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흑자폭을 늘리기 위해 LED(발광다이오드) 부문의 가동률과 다른 전자부품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LG화학은 고급 제품 판매를 늘려 흑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3차원(3D) 편광방식(FPR) 필름과 폴리머 전지가 대표적이다. 중장기적으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ESS)도 새로운 ‘돈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부문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국 관광객 덕에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국내 화장품 시장에 주력할 방침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