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국 남자수영의 간판은 조성모 선수였다.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던 고 조오련 선수의 차남인 성모는 당시 고려대 재학생이었고 필자는 체육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성모가 100㎏이 넘는 거구로 변신해 찾아왔다. 깜짝 놀라 사연을 물었더니 삼부자가 릴레이로 대한해협을 횡단했는데 차가운 물에 견디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웠다는 것이다.

스피드가 생명인데 그 몸으로 어떻게 하냐고 다그쳤더니 박태환이라는 초등학생 스타가 등장해 자신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스무 살밖에 안된 녀석이 무슨 소리냐고 힘내도록 격려하고 몸을 정상으로 만드는 조건으로 상금을 약속했더니 한 달도 못 돼 날씬한 몸매로 나타나 돈을 챙겨갔다. 그 후 조오련 선수가 찾아와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이고 국가대표인 성모에게 수영연맹이 아무 관심도 없다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삼부자가 몸무게를 불려 대한해협을 넘나든 것도 수영연맹에 대한 시위였던 것이다.

박태환 선수에게 ‘몰빵’을 건 수영연맹은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연이어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선수층 저변확대에 실패해 박 선수 이후 브라질 올림픽에 대비할 유망주가 눈에 띄지 않는 빈약한 상황이 됐다. 1등 띄우기 못지않게 선수층 관리에도 정성을 다해야 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국제경제 동반침체 국면에서도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세계인의 선망 대상인 양대 기업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매우 높지만 국내 평가는 냉랭해 ‘양극화 유발 주범’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삼성전자 질주는 반도체에서 휴대폰으로 이어졌다. ‘정치가 기업을 말아먹은’ 반도체 빅딜로 어색하게 출범한 하이닉스가 부실로 허우적거리는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는 쾌속성장을 지속했다. 현대차가 기아차와 통합 시너지로 비상하는 동안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는 외국자본과 국내 금융권의 엉성한 동거로 쪼그라들었다. 양대 기업의 질주는 탐욕경영보다는 경쟁세력 부재에 따른 반사이익 영향이 컸다.

외환위기로 부실화된 은행 및 은행관리기업의 주인 찾기가 15년 넘게 표류하면서 우리금융,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쌍용건설 등의 무주공산 사태가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 인천공항, 산은지주 및 기업은행 등 민영화 대상 공기업도 방향을 잃고 떠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성과는 김영삼·김대중 정부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정부가 과반수 지분을 보유한 우리금융은 비정상적 지배구조로 또 다른 정권을 맞게 됐다. 민영화 미적거리기에는 정치권과 행정부뿐만 아니라 해당기업 임직원도 합세한다. 정치권과 행정부는 낙하산 투하 요충지를 놓치기 싫고 임직원은 주인 없는 회사가 더 편하다. 정부 입맛대로 끌려 다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수자원공사, 한국전력 등의 빚더미는 아찔한 수준이다.

대통령 인사권은 공기업에 대해서는 법률로 보장돼 있으나 은행관리기업은 근거도 없이 눈치 수준으로 행사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과 이명박 정부에서의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의 청와대를 겨냥한 연임로비 스캔들은 기막히게 닮은 꼴이다. 양대 정권에서 더욱 심해진 대선캠프 출신 사장·감사·사외이사 낙하산 봇물은 3각 구도로 복잡해진 이번 대선판에 대학교수까지 대거 뛰어드는 캠프족 폭증사태를 불러왔다.

부실로 은행관리에 들어간 기업이 신속히 새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공모 및 사모 펀드에 대한 규제를 풀어 국내자본 인수세력을 키워야 한다. 공기업과 은행관리기업 경영을 민간에 맡기는 ‘민영화’를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려야 한다.

앞서가는 박태환 선수 ‘발목잡기’식의 선두주자 견제가 경제민주화 목표일 수는 없다. 조금 뒤처진 주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다. 민간의 생산성과 창의력을 불어넣는 임파워링(empowering)을 확산시키는 민영화 및 중소기업 업그레이드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돼야 한다. 경제민주화 역군으로는 선두주자 주머니를 터는 로빈 후드(Robin Hood)보다는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드는 브레드위너(breadwinner)가 제격인 것이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