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합리적 노사문화가 정착하려면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행태가 사라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회사들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노조의 불법 파업에 부득이하게 직장폐쇄를 단행했는데도 정치권이 개입해 노조의 기대심리를 부추겨 문제를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SJM 발레오전장 상신브레이크 등 최근 국회 국정감사나 청문회 조사 대상 기업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별 기업의 정리해고 행위와 노사 갈등에 국회의원들이 깊숙이 개입해 청문회나 국정감사 자리에 경영진을 불러내 압박하는 국가가 한국 외에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정리해고의 경우 노조와 협의를 벌이거나 법적 절차를 거쳤는데도 정치권이 끼어들어 재협상을 요구하는 행위는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 전혀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진숙 씨의 크레인 시위 등을 통해 사회문제화한 한진중공업 사태의 경우 정치인들의 개입이 심해지면서 합법적인 정리해고가 아예 무시되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무분별한 개입은 국제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한국의 경제성장 및 일자리 창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개별 기업 노사문제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노사의 자율적인 협상을 존중할 때 원만한 노사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동법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노사 갈등으로 국회에서 문제가 된 상신브레이크 발레오전장 유성기업 SJM 만도 등의 공통점은 노조가 특근 거부 태업, 파업 등 불법 쟁의행위를 벌인 뒤 회사 측이 생산 피해를 우려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는 점이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불법으로 공장을 점거하거나 점거 계획을 세웠지만 공권력은 거의 뒷짐을 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회사 측은 노조의 공장 점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설 경비를 끌어들였고 일부 사업장에서는 노조와 마찰도 빚었다.

직장폐쇄 조치는 현재 한국의 노동법제나 정부의 관리능력, 노동운동 수준 등으로 볼 때 부득이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직장폐쇄 조치가 정치권과 노동계의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정치권은 노사 갈등을 빚은 사업장의 직장폐쇄 조치에 문제가 있다며 따지고 있고 노조는 아예 법적으로 직장폐쇄 제한을 요구한다.

직장폐쇄는 국내에서만 논란을 빚는 특이한 제도다. 외국에서는 직장폐쇄를 둘러싼 논란이 거의 없다. 불법 파업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데다 사업장 내 파업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업을 벌이더라도 피켓시위를 하거나 집에서 쉬면서 노무 제공을 거부할 뿐 한국처럼 공장을 점거하는 일은 거의 없다. 파업 기간 중 외부 인력의 대체근로도 가능하다.

이러니 회사 측은 노조의 파업에 대항해 직장폐쇄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불법 파업이 성행하는 국내에서 직장폐쇄를 제한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노조의 불법 파업이 벌어지고 사용자의 영업권과 시설 보호를 위한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직장폐쇄가 부득이한 측면이 있다”며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생산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