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전부터 절묘한 ‘타이밍’ 정치로 지지율을 극대화했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출마 선언 이후에도 기성 정치인 못지않은 감각으로 대선 화두를 선점하고 있다. 일각에선 “정치감각이 아마추어 10단은 되는 것 아니냐”는 애기도 나온다.

안 후보는 지난 7일 “여·야·정+대선후보 간 정책 협의체를 만들어 대선 전까지 경제민주화 법안을 확정하자”고 제안했다. 안 후보 캠프 측은 “이렇게 되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민주화가 현실화될 것”이라며 “여야가 하루빨리 공개 제안에 대해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당사자인 여야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내용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불쑥 말만 해놓고 구체적인 액션이 없다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도 “입법이 붕어빵 찍어내듯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여야에 입법을 촉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고 여야의 의견을 듣는 게 옳은 수순”이라고 반박했다.

안 후보가 여야를 아우르는 화두를 던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19일 출마 선언 당시 “세 후보가 한 자리에 모여 정책 경쟁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자”며 ‘3자회동’을 제안했다. 결국 3자회동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정치적으론 화두 선점이라는 전과를 챙겼다. 정치 아마추어인 안 후보는 정치개혁을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안 후보가 이처럼 여야 후보를 향해 계속 공개 제안을 하는 것은 기성 정치와의 차별화를 통해 대선 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한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는 “안 후보가 ‘말씀’만 하면 여야 후보들이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냐”며 “이는 마치 자신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으로 대선 후보들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력 후보들이 모여 ‘페어플레이’를 외치거나 선거 전 공약을 합의하는 모습은 기존 정치 공식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여야 후보들이 안 후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승리자는 안 후보가 되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국민들 입장에서 정당하게 느껴지는 요구를 거부하기도 어려워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