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만큼 해당 국가의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현지에서 생활하며 한국 음식을 알리고 독도 문제 같은 이슈들에 대해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민간외교관인 셈이지요. 그 숫자가 대략 50만명 정도 됩니다.”

스스로도 ‘민간외교관’임을 강조하는 천순복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월드키마·World-KIMWA) 회장(50·사진)의 목소리에 자긍심이 묻어났다. 월드키마는 국제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친목단체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3개국에 32개 지회, 50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한미여성회총연합회를 전신으로 2005년 발족했다.

9일부터 3박4일간 충남 예산 덕산리솜스파캐슬에서 ‘제8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를 여는 천 회장. 대회 준비를 위해 지난달 27일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그를 최근 서울역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전 세계에서 100여명의 한인 여성이 모입니다. 모두 자비를 들여 참석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지 않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올해는 ‘세계 국제결혼 여성을 하나로’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월드키마의 주된 사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다문화가정 지원.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ACA외국인학교와 이주여성단체 ‘토크투미’와 결연, 매년 후원금을 보내고 학생들을 선발해 해외 문화 체험 기회를 주고 있다.

“사실 우리 회원들이 다름아닌 다문화가정이거든요. 지금이야 대한민국이 잘살게 돼 현지인들의 멸시가 많이 줄었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한국사회에서도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잖아요.”

1987년 이탈리아 사업가와 결혼해 25년간을 밀라노에서 살아온 천 회장. 아이들 국적 문제를 얘기하며 고단했던 지난 세월이 생각났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이들 문제가 가장 힘들어요. 엄마 나라에 와서 일하며 살고 싶은데 한계가 많지요. 제 딸 쥴리아(24·연세대 국제학부4)도 대한민국 외교관이 꿈인데, 그러려면 이탈리아 국적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국도 빨리 이중국적을 허용해 우리 아이들이 엄마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월드키마는 첫 대회가 열린 2005년부터 자신들은 물론 자녀들의 이중국적을 허용해달라는 탄원서를 국회와 여성가족부에 제출해오고 있다.

그는 또 한국 정부에 자신과 같은 50만명의 ‘민간 외교관’을 활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국제결혼한 여성 한 사람이 외국에서 10명 정도만 알고 지낸다고 가정해도 500만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알게 되고 호감을 갖는다는 얘깁니다. 우리들을 잘 활용하면 대한민국 외교도 한결 효과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01년 남편과 사별한 천 회장은 밀라노 인근 파비야에서 냉각·냉장 핵심 부품을 수출하는 회사 GSB-SRL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기업 경영관을 들려줬다. “남편을 따라 처음 이탈리아로 떠날 때 약속한 것이 있어요.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강해져야 하는데 한 번, 두 번 거짓말을 하다보면 상대방에게는 물론 스스로 강해질 수가 없거든요.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고요.”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