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서 번진 墨香萬里…추사도 반한 중국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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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14~28일 '明·淸시대 회화전'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 최고의 중국통이었다. 사신으로 파견된 부친 김노경(1766~1837)을 따라 연경을 방문한 그는 금석학자이자 서예가 옹방강(1733~1818)과 필담을 나눴고, 귀국 후에도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제자 이상적은 연경에 갈 때마다 그림과 자료, 책을 구해다 줬다. 이상적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린 그림이 ‘세한도’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적 인물’ 추사와 인연을 맺은 명·청(明淸)시대의 회화와 화파(畵派)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가을 기획전으로 오는 14일부터 28일까지 펼치는 ‘명·청시대 회화대전’이다. 추사가 소중히 간직했던 것으로 알려진 청나라 문인화가 장경의 화첩 ‘장포산진적첩(張浦山眞蹟帖)’을 비롯해 산수화 대가 남영의 ‘산수도권’ 여산추성’, 정섭의 ‘현애총란’, 궁중화가 초병정의 ‘정우출관’ 등 40여명의 작품 60여점이 소개된다. 명·청 시대의 회화적 발전 과정과 미술사적 의미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기회다.
추사가 옹방강에게 선물받은 장경의 화첩 ‘장포산진적첩’에 실린 다양한 그림들이 처음 공개된다. 추사는 제주도에 유배갈 때도 이 화첩을 챙길 정도로 평생 보물처럼 여겼다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제주에서 병을 얻은 추사는 화첩을 예산 고향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절대로 남에게 함부로 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며 “건강을 되찾은 뒤에도 ‘이제 만 번의 죽음 끝에 다시 화첩을 보니 옛날 달빛이 그대로라 나무에 있는 금반지(걸린 달덩이)도 평생 보던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화첩에 수록된 작품 ‘소림모옥’은 추사의 ‘세한도’를 닮아 주목된다. 쭉 벋은 고목과 갈대 숲, 작은 연못을 음화처럼 표현해 고고하지만 쓸쓸해 보이는 선비의 삶을 담아낸 듯하다.
추사의 평생 지기인 권돈인 등의 인장이 찍혀 있는 석두타 남영(1585~1664)의 3.4m 대작 ‘산수도권’도 나온다. 산 속에 은거한 선비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에는 3개의 서로 다른 풍경이 담겨 있다. 송곳처럼 뾰쪽하게 솟은 산맥 밑으로 흐르는 폭포는 북종화의 강한 필묘로, 수림이 우거진 토산은 부드러운 남종화의 묵묘로 처리해 음양조화의 우주관이 잘 드러나 있다.
청나라 난 그림의 대가 판교 정섭(1693~1765)의 작품 ‘현애총란’은 난줄기를 피아노 줄처럼 가늘고 팽팽하게 표현한 게 특징. 바위 밑에서 자라는 군란의 잎새를 보면 생명의 고결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에는 ‘황산진상’ ‘동경지증’ ‘동경추사동감정기’ 등의 인장이 찍혀 있어 추사와 정치적 동지였던 황산 김유근(1785~1840), 옹방강의 제자 섭지선(1779~1863)과 연관된 그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옹방강이 제자 주학년(1760~1834)에게 그리게 해서 추사에게 선물한 ‘구양문충공상’ ‘산곡선생상’ ‘담계선생상’, 매석 이념증(1790~1861)이 추사의 아우 명희에게 그려준 ‘송학명천’, 1927년 겨울 추사에게 보내 준 황공망의 ‘부춘산도권’도 걸린다.
청나라 초기 직업화가 장성의 작품 ‘삼협급탄’도 눈길을 붙잡는다. 선비와 뱃사공이 노를 저으며 가파른 절벽 밑 급류를 위태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측은 “간송 선생은 일찍부터 명·청 시대 그림으로 추사와 관련된 흔적이 있는 그림이라면 기회가 닿는 대로 수집해 추사화파 성립을 규명하는 자료로 쓰고자 했다”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02)762-044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