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면서 티없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한없는 사랑이 샘솟는다. 과거 대가족 제도 하에서는 가족 전체가 아이를 키워냈듯이 이제는 사회 전체가 가족과 같은 울타리가 돼 잘사는 집 아이와 못 사는 집 아이 구분 없이 보육과 교육만큼은 동등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국가백년지대계 차원에서 보육은 정부가 전면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말이 있듯이 스웨덴에서는 재벌은 물론 국왕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보육 혜택을 주고 있는데 이러한 보편적 보육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스웨덴 사회보험청 보육분야 분석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보편적 보육 정책은 국민들로 하여금 아이를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육정책은 안타깝게도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보편적 보육·교육에 대한 높은 국민적 요구에 따라 올해부터 만 0~2세 무상보육과 만 5세 누리과정(정부가 교육·보육비 지원)이 시작됐다. 내년부터 만 3~4세 누리과정이 시행될 예정이어서 2013년이 되면 전면적 무상보육 제도의 틀이 완성되는 셈이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정부는 보육료 지원 대상자를 전 계층에서 소득하위 70%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만 0~2세 전면 무상보육’을 포기한 것이자, 소득계층 등에 상관없이 모든 영유아에게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보육의 보편성과 공공성 후퇴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위 70%만 지원하면 수도권 맞벌이 대부분 제외

물론 무상보육 도입으로 인해 보육수요가 급증해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이 가중됐다거나 심각한 공급부족 현상으로 어린이집 대기자가 늘었다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정책 도입 과정에서 마땅히 고려하고 보완했어야 할 사항을 무시한 결과 빚어진 것으로 ‘넘어야 할 산’이지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회피할 변명거리는 아니다.

정부 개편안이 보여주고 있는 보육정책 방향도 문제지만, 개편안에 담겨 있는 각각의 내용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맞벌이 부부와 비취업모의 사례를 검토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첫째, 수도권에 사는 중산층 맞벌이 부부가 배제되는 현상이다. 올해부터는 부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만 0~2세 모든 영아에게 보육시설 이용료가 지원돼 왔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소득 하위 70%까지만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올해 처음 무상보육 지원을 받은 소득 상위 30% 19만명의 영유아가 월 10만~20만원의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

정부가 기준선으로 삼은 소득 상위 30%의 소득인정액은 월 454만원이다.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 1억7606만원짜리 수도권 아파트에 살며 금융부채 3525만원이 있고 500만원짜리 저축과 2500cc 미만 중형차를 소유한 30대 가장의 소득인정액은 약 458만원이다. 당연히 이들은 보육료 지원 대상이 안된다. 그렇다면 정부 개편안으로 보육료 지원에서 배제되는 대부분의 수도권 전세살이 젊은 부부들이 모두 재벌이라도 된단 말인가.

둘째, 비취업모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는 사례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 ‘양육수당 지원대상 및 금액을 대폭 확대해 가정양육을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명시하고, 기존에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차상위 계층에만 지원하던 양육수당을 시설이용 여부에 상관없이 소득 하위 70%까지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만 0~2세 영아를 키우는 부모 96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수당이 월평균 47만원은 돼야 가정양육을 선택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10만~2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원할 경우 어린이집 이용을 중단하고 집에서 양육하겠다는 부모는 4.5%에 불과했다. 정부가 내놓은 월 10만~20만원의 양육수당으로는 가정 양육을 유도하기 힘들 것임이 자명하다.

또한 가정양육을 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돈 몇 푼의 문제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영아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이유로 39.9%의 부모들이 ‘사회성 발달’을, 23.1%의 부모가 ‘전인적 발달’을 꼽았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핵가족의 보편화 때문인지 ‘돌보기 어려워서’라는 대답도 25.1%나 됐다. 결국 보육시설 외에는 엄마의 양육을 보완해줄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충분하지 않은 양육수당만 주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다.

보육예산 GDP 대비 0.4%…OECD 평균 밑돌아

정부는 이번 개편안의 배경으로 재정문제를 언급하며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어떤 국가정책이든 비용의 수반은 불가피한 것이다. 해당 정책의 중요도로 우선순위를 고민해야지, 오로지 예산 문제 때문에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보육에 대한 투자는 당연히 최우선 순위에 해당한다. 앞서 언급한 건강한 시민 육성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보육서비스 확대를 통해 일자리와 사회 인프라가 확충되는 효과도 상당하다. 이제는 복지·교육정책도 통치자의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국민경제, 건강한 공동체라는 큰 틀 속에서 다뤄야 한다. 무상보육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상위 70%라는 자의적 기준으로 69%와 71% 구간에 속하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복지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또 재정 부담이란 그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보육서비스’ 보고서에 따르면 만 5세 미만 아동들을 위한 우리나라 보육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4%로 OECD 평균(0.6%)을 밑돌고 있다. 덴마크는 1.3%, 스웨덴 영국은 1.1%를 지출하고 있고, 프랑스 노르웨이 핀란드 등도 높은 보육예산 비율을 보이고 있다.

즉 우리나라가 영유아들을 위해 지출하는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다고도 할 수 없다.

이언주 < 민주통합당 의원 >

△서울대 불문학 △사법고시(39회) △에쓰오일 상무 △민주통합당원내대변인(국회의원·경기광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