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삼성맨 류중일 감독 '큰형 리더십'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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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2년 연속 우승
코치진 안 바꾸고 부진한 선수 계속 기용
초반 7위서 1위까지 끌어올린 '믿음의 야구'
코치진 안 바꾸고 부진한 선수 계속 기용
초반 7위서 1위까지 끌어올린 '믿음의 야구'
“야구는 하루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다. 시즌은 1년 가까이 치르는 장기 레이스다.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지만 눈앞의 결과에 연연해 자신감까지 잃어버리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야구’를 강조하는 류중일 감독(사진)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26년 동안 ‘삼성맨’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일 잠실구장은 마치 삼성의 홈구장 같은 분위기였다. 삼성은 홈팀 LG를 9-3으로 완파하고 76승50패2무를 기록, 남은 5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하며 축포를 터뜨렸다. 삼성 선수단뿐만 아니라 이날 경기장을 찾은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이인용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 등 그룹 관계자들도 삼성의 우승을 자축했다.
류 감독은 삼성 선수단에 ‘큰 형님’ 같은 존재다. 그는 1987년 선수로 입단한 뒤 코치를 거쳐 26년째 삼성맨으로 활약해온 프랜차이즈 스타다. 팀의 사정에 밝은 류 감독은 지난해 삼성 지휘봉을 잡은 뒤 코치와 선수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부여하고 그들의 역할을 최대한 인정해줬다. 그는 지난해 감독 부임 이후 정규리그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한 뒤 아시아 클럽 대항전인 아시아시리즈마저 제패, 3관왕을 달성하며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초보 감독으로서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거둔 것은 선동열 KIA 감독이 삼성 감독 시절인 2005~2006년 정규 리그 우승을 일군 이후 두 번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삼성은 시즌 개막 전부터 우승 후보 0순위로 손꼽혔지만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승 전력을 그대로 유지한 데다 일본에서 돌아온 ‘거포’ 이승엽이 가세하면서 삼성은 ‘1강’으로 꼽혔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3연패를 당하며 예상밖의 부진한 출발을 보였고 5월 말까지도 6~7위권에 머물렀다.
류 감독이 개막전 선발로 내세웠던 ‘에이스’ 차우찬이 부진하며 4월 말 2군으로 떨어졌고, 전년도 타격 3관왕 최형우도 슬럼프에 허덕였다. 공수에서 엇박자가 계속되며 집중력까지 흐트러졌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류 감독의 리더십은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6월 초 선수단 전체 미팅을 소집해 “어차피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결국 우린 올라간다”고 독려했다. 선수들은 코치진과 함께 똘똘 뭉쳐 슬럼프 탈출을 위해 맹연습을 계속했다.
자신감을 되찾은 삼성은 6월 들어 대반격을 시작했다. 6월5일부터 7월19일까지 32경기에서 23승(1무8패)을 거뒀다. 6월 들어 안정세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4강에 진입하고 5할 승률에 복귀했다. 7월8일 선두로 뛰어오른 이후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으며 1일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코치·선수에 대한 강한 믿음
‘믿음의 야구’를 펼치는 류 감독은 당장의 성적이나 여론에 일비일희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 팀 성적이 저조할 땐 류 감독이 부진에 빠진 몇몇 선수들을 고집스럽게 기용해 ‘편애’ 비난이 일었고 단조로운 용병술 때문에 ‘관중일’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당장의 성적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았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질책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할 수 있다”고 독려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선수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렸다.
류 감독은 ‘감독은 코치에게 역할을 맡기고 그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철학을 실천에 옮겼다. 이번 시즌 내내 한 번도 코치들의 보직을 바꾸지 않았다. 다른 팀이 성적에 따라 코치진을 수시로 바꾸고 감독까지 교체했던 것과 비교된다. 삼성은 코치들에게 최대한 권한을 부여하며 자신의 팀 색깔을 끝까지 유지했다.
이런 그의 철학은 선발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한 ‘투수왕국’이란 평가로 돌아왔다. 류 감독은 “야구는 투수 놀음인데 투수들의 컨디션을 살펴준 오치아이 에이지, 김태한 투수 코치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 출신인 오치아이 코치(43)의 올해 연봉(1800만엔·약 2억5800만원)은 류 감독(2억원)보다 많다. 오치아이 코치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일본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안을 받았지만 삼성에 남아 선발진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