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카드빚 해결…이젠 플러스 인생
카드사태가 터지기 한 해 전인 2002년.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은행 카드사 등과 함께 다중채무자 지원을 위한 대책마련에 착수했고 그해 10월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카드 빚 5000만원을 갚지 못해 채무독촉에 고통받던 이규엽 씨(47)도 2004년 3월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는 7년간 매월 60만원씩 한 번도 밀리지 않고 빚을 갚고서야 지난해 초 ‘신불자’라는 꼬리표를 뗐다. 지금은 인천 청천동의 한 중소 제조업체 부장으로 일하면서 연매출 50억원에 달하는 회사의 안살림을 맡고 있다. 28일 추석을 앞두고 기자와 만난 이씨는 신용회복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들을 덤덤하게 털어놨다.

1991년 11월 이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해태그룹) 마케팅기획과에 대졸 공채로 합격했다. “화근은 좀 더 빠른 (성공의)길을 찾고 싶은 조급한 성격에서 시작됐습니다.” 직장생활의 무료함을 느낄 즈음 이씨는 5년간 대기업 생활을 접고 외국계 대형 유통회사(까르푸)의 매장 매니저로 변신했다.

그러던 중 전자부품 제조업을 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전자부품 유통라인 중 하나를 맡아서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바로 직장을 나와 경리사원 한 명을 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저기 영업을 다니며 노력한 끝에 1년 만에 매출이 월 8000만원으로 늘었다. 3년이 흘러 직원이 7명까지 됐을 무렵, 사업을 도와준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금에 문제가 생겨 자금회전이 안 되니 결제 시기를 늦춰달라”는 부탁이었다. 결국 지인은 회사를 정상화시키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그의 부도는 이씨에게도 치명타가 됐다. 2억원이 넘는 물품대금을 8개월째 받지 못했다.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고 10개가 넘는 신용카드에 의지해 돌려막기를 해야 했다.

“내일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압류처분 들어갈 테니 알아서 하세요.” 핏발 서린 카드사의 연체 독촉전화가 시작됐다. 결국 딱지를 붙이러 온다는 통지를 받고 옆집에 가전제품과 집기를 맡겼다. “5학년이던 딸이 ‘왜 우리 집 피아노를 남의 집에 주느냐’며 붙잡고 울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하루 수십 차례 걸려오는 카드사의 독촉 전화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서 주변의 소개로 신복위를 찾았다. 신복위는 이씨에게 5000만원에 달하는 채무를 7년간 매월 60만원씩 갚도록 조정했다.

이씨와 세 식구는 지난 7년간 채무 변제를 하기 위해 그 흔한 외식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 나들이 같은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월급 100여만원에서 월 60만원씩 갚고 남은 40만원과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고생해서 가져온 돈을 조금 합쳐 한 달에 10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기초생활을 이어온 것이다. 기초적인 수준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일은 남들보다 두 배 이상 했다.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평가를 받게 된다.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올랐다. 몇 달 전에는 경기도 부평에 있는 30평짜리 빌라전세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씨는 불황의 여파 등으로 빚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한다. 눈앞에 있는 고통이 전부가 아니고 인생의 끝도 아니다는 것이다.

“지난 7년이 없었다면 참 행복의 의미를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경험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준 뜻깊은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