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취업 현황표 놓고 매일 체크… 교수들 울어가며 취업시켰다
"대학 구조조정 목표 정확히 인식하고 평가지표 상시분석해야"

<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인터뷰] 강태범 상명대 총장 "국내 10대 대학 진입 자신한다" …"지난 1년은 고통스러웠지만 값진 경험"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아요. 작년 9월5일입니다.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이 발표됐는데 우리 대학이 포함됐어요. 그날은 '교치일(校恥日)'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패닉, 안이함이 낳은 결과였죠. 교수·학생·직원·동문 모두 절치부심했어요. 평가지표를 끌어올리고 다른 대학들 현황도 일일이 체크했습니다. 결국 올해 탈출했죠. 상처가 깊었지만 많은 걸 얻었습니다."

강태범 상명대 총장(62·사진)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상명대는 지난해 하위 15%에 해당하는 재정지원 제한대학 명단에 들었다.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인 상명대가 이른바 '부실대학'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의외였다. 이현청 당시 총장을 비롯한 보직 교수들이 단체로 사퇴했다. 명단 발표 후 보름 만에 강 총장이 '구원투수'로 전격 투입됐다.

강 총장은 기본부터 다시 시작했다. 학생·교수·동문·학부모를 아우르는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 의견을 물었다. 법인 이사장과도 정기적으로 만나며 지원을 확보했다.

평가지표 개선은 꼼꼼히 해나갔다. 정부의 평가방식인 '포뮬러 방식'을 그대로 적용, 자체적으로 점수를 집계해 전국 대학 순위를 매주 비교했다. 처지는 지표에 대해선 재원을 투입해 순위를 끌어올리는 노력을 반복했다.

특히 부실대 굴욕의 주범인 취업률 향상에 총력을 다했다. 교수에게 학생들을 할당해 취업 목표치를 채우게 했고, 3주에 한 번꼴로 전체 교수들을 모아 취업률 현황을 체크했다. 총장실 책상엔 학생 개개인의 취업 여부를 확인하는 현황표가 놓였다.

강 총장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맞는 일자리에 가도록 하는 게 정말 힘든 일" 이라며 "학생들을 설득시켜 취업하게 하는 과정에서 울어버린 교수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학생들과 친밀한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반성도 많이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 부실대학 오명을 벗었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안이했습니다. 우리 대학은 어떤 기준과 지표로 평가받아도 중상위권에 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지정된 건 돈으로 따지면 1000억~2000억 원 정도의 손실일 겁니다. 학교의 명예와 구성원들의 자존심이 추락하고 외부의 시선 속에 1년을 산다는 게 참 고통스러워요. 다행히 모두가 혼연일체로 움직였습니다. 올해 단순히 하위 15%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상위권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얻었죠. 상처도 받았지만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어떤 정신 상태로 무슨 역할을 할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고 할까요.

-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요.

재정지원 제한대학 지표를 대학별로 일일이 대조했어요. 학교에 평가 전담 부서를 만들고, '대학알리미'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지표들을 조사해 전국 4년제 대학을 한 주마다 비교했습니다. 분석 후 목표치를 정했어요. 지난해 취업률은 45% 수준이었으니 올해는 60% 대로 맞추자, 이렇게 가는 거죠. 실제 취업률이 1년 동안 그만큼 상승했습니다. 상대 평가라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우리 대학이 지표를 올려도 다른 대학이 더 올리면 순위가 낮아지니까요. 따라서 한 주 단위로 계속 체크해 문제 있는 지표값은 끌어올렸죠.

- 취업률을 단기간에 크게 끌어올린 비결은 뭡니까.

작년 취업률이 44%대였습니다. 교수도 학교도 움직이지 않고 놔두면 그 정도죠. 올해 취업률 급상승에 제일 큰 역할을 맡은 건 교수들이에요. 전면에서 뛰었어요. 예전엔 교수들이 연구·교육·봉사가 교수의 일이라 생각하고 학생 취업엔 크게 신경 안 썼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교수들도 학생들을 가르친 결과물로 취업까지 책임져야겠다며 인식을 바꾼 겁니다. 교수 1명 당 학생 몇 명씩 취업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할당했어요. 교수들이 일일이 학생에게 전화 걸어 설득하고, 학교 차원에서 전체 교수회의를 열어 취업률을 체크했죠.

- 정말 힘든 과정이었겠습니다.

교수들이 취업 문제로 학생들에게 전화하면 처음엔 받다가 나중엔 안 받아요. 사무적으로 대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교수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여교수들은 총장실에 찾아와서 울기도 했어요. 이번에 느낀 게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도록 설득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연구만 하던 교수는 학생들이 연락을 안 받는 반면 학생들과 친밀하게 지내던 교수는 안 그렇더란 말이죠. 취업 독려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교수와 학생들의 평소 친분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올해 지정된 재정지원 제한대학들에 조언을 한다면.

1차적으로 지표를 정확히 이해해야 돼요. 우린 연구 실적 좋은데 왜 부실대학이냐, 이러면 핀트가 어긋나는 겁니다. 정부 목표는 그게 아니거든요. 대학을 없애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잖아요. 이걸 인지한 다음 스스로 철저히 분석하고, 총장 혼자가 아닌 구성원 전부가 움직여야 합니다. 이후 내부 정책을 정할텐데 폐과를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학과 없앤다는데 어느 교수가 학생 취업시키러 뛰어다니겠어요. 우리 대학의 경우 학과 구조조정보다 학생들을 트랙을 나눠 취업시키는 방법을 썼어요. 상황에 맞는 정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죠. 제일 중요한 건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 평가란 점입니다. 비슷한 수준의 대학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표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내 대처해야 합니다.

- 이제 도약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학교를 어떻게 발전시킬 생각입니까.

국내 10위 안에 드는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상명대의 중장기 발전전략이 '스마트 2015' 비전인데, '대한민국 10%' 가 목표입니다. 4년제 대학이 200여 개 중 10%라면 20위 안인 셈이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죠. 발전의 내용은 IT 기반 융합적 특성화입니다. 크게 서울캠퍼스는 IT, 천안캠퍼스는 이에 기반한 디자인 쪽을 콘셉트로 잡았어요. 지난 한해 너무 큰 상처를 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구성원과의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글로벌 상명, 다이나믹 상명' 을 이루도록 늘 낮은 자세로 임하는 총장이 되겠습니다.

◆ 강태범 총장은…

경희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명대의 전신인 상명여대 화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획조정실장, 기획처장, 기획부총장, 서울캠퍼스 부총장 등을 거쳤다. 1995년 상명여대에서 상명대로의 남녀공학 전환, 2005년 제2주기 대학종합평가 최우수대학교 선정 당시 진두지휘한 경험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해 9월 총장에 취임했다.

글 =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 사진 = 변성현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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