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얼마나 떼길래…공개 꺼리는 보험사
주부인 현명숙 씨(52)는 최근 저축성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한 보험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월 보험료와 가입기간 등에 대한 상담을 받은 뒤 수수료(사업비)가 얼마인지 물어봤다. 매달 바뀌는 적용금리와 함께 실제 환급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여서다. 이 상담원은 “수수료의 경우 전문 부서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고 여기선 알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14년 전 연금보험에 가입했던 은행원 송형섭 씨(39)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연금에 추가 납입하면 유지·관리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담당 설계사에게 물어봤지만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답변만 들었다. 송씨는 “내가 내는 수수료도 알려주지 않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해 민원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보험사들이 수수료 공개를 꺼리고 있어 관련 민원이 크게 늘고 있다. 현재 보험상품에 가입하기 전 수수료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보험사는 거의 없다. 생명보험협회는 오는 11월부터 모든 저축성 상품의 실수익률을 조회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지만 수수료의 징구 방식이 복잡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올 상반기 수익률 논란이 일어난 후 실수익률을 보여주는 시스템을 준비해 왔다”며 “다만 사업비의 경우 설계사나 전화, 인터넷 채널 등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완전한 비교공시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유독 상품 수수료를 철저하게 숨기는 이유는 복잡한 내부 사정 탓이다. 우선 월보험료보다 최고 10배 이상 많은 보험 수수료를 공개할 경우 판매가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상품 판매를 대부분 설계사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계사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사업비를 다 공개하라는 것은 아파트 분양가에서 원가를 밝히라는 압박과 같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이 작년 4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종신보험 수수료는 월보험료 대비 평균 1022%(전속설계사 기준), 치명적질병(CI) 보험 수수료는 987%에 달했다. 생명·손해보험사의 연금상품 수수료도 300~400%에 달했다. 월 100만원을 연금보험료로 납부한다면 10년 안팎에 걸쳐 300만~400만원을 총 수수료로 떼간다는 의미다.

보험사와 달리 은행 증권사 등 다른 금융권에선 수수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예·적금엔 별도 수수료가 없지만 은행 창구에선 세금을 감안한 실제 원리금을 안내하고 있다. 증권사에서 펀드에 가입할 땐 운용사·판매사·수탁사별 수수료와 함께 총보수를 공개한다. 일부는 수수료가 저렴한 펀드만을 비교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금도 소비자가 상품요약서 등을 받아보면 사업비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며 “다만 상품 가입 당시부터 사업비를 모두 알려주도록 보험사들의 설명의무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보험사에 대한 민원이 2만3456건으로 전체의 49.4%를 차지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