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르키 드 사드(1740~1814)의 《소돔의 120일》의 한국어 번역판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 소설이 “근친상간과 가학·피학적 성행위 등 표현 수위가 지나치고 반인륜적 내용이 상당히 전개됐다”고 판정해 배포 중지와 즉시 수거를 결정했다. 출판사에선 법원에 호소하겠다고 한다.

‘사디즘’이란 말이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사드의 작품들은 모두 변태적 성을 다뤘다. 다섯 편은 생전에 출간되었으나,《소돔의 120일》은 1904년에 독일에서 발견돼 출판됐다.

그의 작품들은 아직도 음란하다고 여겨지고 대부분의 판들이 비공식적으로 유통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훌륭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극찬도 들었다. 셍트-뵈브, 보들레르, 스윈번이 그의 작품들을 높이 평가했고 라마르틴, 로트레아몽,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가 영향을 받았다. 마침내 그의 작품들에 반한 아폴리네르와 초현실주의자들의 노력으로 그와 그의 작품들은 악평에서 벗어났다. 그 뒤로 그와 그의 작품들은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이제 그의 작품들은 ‘악마적 웅장함’을 지녔음이 드러났고, 그는 인간의 조건을 넘으려고 시도한 반항적 인물로 여겨진다.

이번 판매 금지 조치는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에 관해 성찰할 계기를 주었다. 예술 작품들을 검열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예술과 외설은 어떻게 다른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와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우리는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은 우리 사회 모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므로 우리의 모든 활동들은 도덕과 법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 예술 활동도 예외일 수 없다. 예술 작품들에 대한 제약은 대개 검열의 형태를 가진다.

예술 작품들에 대한 검열엔 두 가지 문제가 따른다. 하나는 종교적 및 정치적 권력에 의한 탄압이다. 다른 하나는 판정 기준의 애매함에서 나오는 폐해다.

전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상이다. 전체주의 사회들은 예술을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여기고 그런 목적에 맞지 않는 예술은 박해한다. 소련과 나치 독일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불온하거나 퇴폐적이라고 여겨진 작품들을 탄압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1980년대와 1990년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실질적인 기준이 됐다. 그래서 검열에 가까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작가들의 자기검열도 상당해서, 예술의 위축을 불렀다.

후자는 흔히 관능적 예술 작품들의 경우에 나온다. 예술과 외설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예술은 삶의 진실을 드러내려 애쓰고 외설은 독자들을 조종하려 시도한다는 얘기를 흔히 한다. 그러나 그런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는 일은 어려울 뿐더러 세월이 지나고 사회가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바뀐다. 잘 알려진 것처럼,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그리고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처음엔 검열에 걸렸으나 뒤에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들로 인정받았다.

이번 경우엔 《소돔의 120일》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점도 반영돼야 한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뛰어난 비평가들의 찬탄을 받은 작품이라면,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사드의 작품이 검열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서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른 나라 지식인들의 마음에 비친 우리 사회의 이미지가 조금은 부정적이 되리라는 점이었다. 고전이 된 작품들은 위치재(positional goods)의 지위를 누리므로, 보다 큰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예술 작품들을 검열할 때는 여느 때보다 좀 너그러운 기준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고전이 된 작품들을 검열할 때는 그것이 누리는 위치재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결론 다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

복거일 <소설가·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