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출근이라는 이름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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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30분 걸리는 '출·퇴근 여행'…시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
김혜경 < 이노션월드와이드 전무 hykim@innocean.com >
김혜경 < 이노션월드와이드 전무 hykim@innocean.com >
출퇴근에 적절한 시간은 몇 분 정도일까? 딱히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대도시의 직장인이라면 내심 20분에서 40분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 집은 양평에 있다. 별장이 아니고 진짜 ‘집’이다.
4년 전 양평에 집을 짓고 이사를 간다고 하자 회사사람들은 “와, 꿈의 전원생활이잖아…좋겠다”라고 말했지만 “저런 저런, 제 정신이 아니군”이란 표정이 역력했다. 좀 친한 사람들은 “사서 고생을 하네,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주말에만 가는 게 어때?”라고 걱정인지 닦달인지를 했다.
우리 집에서 뱅뱅사거리에 있는 회사까지는 딱 42㎞. 사실 따지고 보면 일산과 비슷한 거리. 하지만 일산 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도 양평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양평에는 회사원들이 옆집, 앞집, 뒷집 모여 사는 아파트 같은 건 없으니까 출퇴근 같은 걸 하기엔 왠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는 말씀.
하지만 출근 시간을 그냥 단순히 회사로 가는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남들은 어쩌다 하는 여행을 나는 매일매일 하기 때문이다.
‘떠난다’는 느낌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기분이 있을까. 북한강변을 달리며 FM라디오 음악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으면 왠지 집으로 간다, 혹은 회사로 간다기보다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분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그 한 시간 남짓은 내게 피로의 시간이 아니라 ‘치유의 시간’이다.
어느 날인가 회사에서 아주 우울한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 “에이, 이제 그만둔다”하고 나 혼자 소리 내어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이 나이에도 나를 이기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래봤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 아침에 왔던 똑같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날 따라 강변의 하늘에 노을이 발갛게 졌다.
그리고 주파수 91.9에서 나오는 노래 전인권의 ‘봉우리’.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누가 볼 사람도 없고해서 달리며 실컷 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다시 잔잔해졌다.
세상은 복닥복닥 난리를 치고 있지만 강물은 언제나처럼 느릿느릿 흐르고 산그늘은 늘 그 시간만큼 짙어졌다. 1시간30분 남짓, 나는 마음 속으로 여행을 떠났고 다시 평온해져서 돌아왔다.
시간이란 결국 길이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5분도 길고 1시간도 짧은 것. 나는 매일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행을 하니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김혜경 < 이노션월드와이드 전무 hykim@innocean.com >
4년 전 양평에 집을 짓고 이사를 간다고 하자 회사사람들은 “와, 꿈의 전원생활이잖아…좋겠다”라고 말했지만 “저런 저런, 제 정신이 아니군”이란 표정이 역력했다. 좀 친한 사람들은 “사서 고생을 하네,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주말에만 가는 게 어때?”라고 걱정인지 닦달인지를 했다.
우리 집에서 뱅뱅사거리에 있는 회사까지는 딱 42㎞. 사실 따지고 보면 일산과 비슷한 거리. 하지만 일산 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다가도 양평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양평에는 회사원들이 옆집, 앞집, 뒷집 모여 사는 아파트 같은 건 없으니까 출퇴근 같은 걸 하기엔 왠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는 말씀.
하지만 출근 시간을 그냥 단순히 회사로 가는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남들은 어쩌다 하는 여행을 나는 매일매일 하기 때문이다.
‘떠난다’는 느낌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기분이 있을까. 북한강변을 달리며 FM라디오 음악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으면 왠지 집으로 간다, 혹은 회사로 간다기보다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분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그 한 시간 남짓은 내게 피로의 시간이 아니라 ‘치유의 시간’이다.
어느 날인가 회사에서 아주 우울한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 “에이, 이제 그만둔다”하고 나 혼자 소리 내어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이 나이에도 나를 이기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래봤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 아침에 왔던 똑같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날 따라 강변의 하늘에 노을이 발갛게 졌다.
그리고 주파수 91.9에서 나오는 노래 전인권의 ‘봉우리’.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누가 볼 사람도 없고해서 달리며 실컷 울었다. 그렇게 조금씩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다시 잔잔해졌다.
세상은 복닥복닥 난리를 치고 있지만 강물은 언제나처럼 느릿느릿 흐르고 산그늘은 늘 그 시간만큼 짙어졌다. 1시간30분 남짓, 나는 마음 속으로 여행을 떠났고 다시 평온해져서 돌아왔다.
시간이란 결국 길이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5분도 길고 1시간도 짧은 것. 나는 매일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행을 하니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김혜경 < 이노션월드와이드 전무 hykim@innoce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