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선출마 선언] 의사서 벤처 CEO 거쳐 교수로…서울시장 양보…대선주자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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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후보가 걸어온 길
PC 바이러스가 인생 바꿔
낮엔 의사·밤엔 백신 제작
PC 바이러스가 인생 바꿔
낮엔 의사·밤엔 백신 제작
안철수 대선 후보의 이력은 다채롭다. 의사로 시작해 컴퓨터 프로그래머,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대학교수를 지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로 거론되며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고 마침내 대선에 출마했다.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난 안 후보는 부산 중앙중·부산고를 졸업했다. 그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학창시절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도서관의 책은 거의 모두 대출해 읽을 만큼 책을 좋아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책을 보면 페이지 수, 발행연월일까지 읽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도 주워서 읽는 활자중독증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오르기 시작해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대학에서 만났다.
안 후보의 인생을 바꾼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인연은 1988년 의대 대학원을 다닐 때 이뤄졌다. 심장부정맥을 연구하며 컴퓨터 언어를 배운 직후였다. 안 후보는 밤을 새워 바이러스를 분석해 V3(안티바이러스프로그램)의 최초 버전인 V1을 만들었다. 그는 “그때부터 7년간 밤에는 백신을 만들고 낮에는 의사로 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1995년 안 후보는 의대 교수직을 그만뒀다. 그는 “교수를 하면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데 지도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면 학생이 불행하지 않겠느냐”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안 후보는 7년간 연구·개발한 자료를 들고 공공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비영리 공익법인’을 세우려고 했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3월15일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만들었다.
설립 초기 안 후보는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25일이 돌아오는 게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1999년 4월26일 체르노빌(CIH)바이러스가 퍼지며 연구소는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2005년 안 후보는 “내 능력을 산업 전반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안랩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밟았다. 2008년 귀국한 안 후보는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 2011년부터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옮겼다.
안 후보가 ‘정치인’으로 부상한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다.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며 순식간에 지지율 50%를 넘나들었지만 당시 박원순 후보를 만나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서울시장 후보직 양보는 그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대선출마에 대해 말을 아끼던 그는 지난 7월19일 책 ‘안철수의 생각’을 내고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국민의 뜻을 듣겠다”며 국민소통 행보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개월 만에 출마를 선언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난 안 후보는 부산 중앙중·부산고를 졸업했다. 그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학창시절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도서관의 책은 거의 모두 대출해 읽을 만큼 책을 좋아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책을 보면 페이지 수, 발행연월일까지 읽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도 주워서 읽는 활자중독증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오르기 시작해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대학에서 만났다.
안 후보의 인생을 바꾼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인연은 1988년 의대 대학원을 다닐 때 이뤄졌다. 심장부정맥을 연구하며 컴퓨터 언어를 배운 직후였다. 안 후보는 밤을 새워 바이러스를 분석해 V3(안티바이러스프로그램)의 최초 버전인 V1을 만들었다. 그는 “그때부터 7년간 밤에는 백신을 만들고 낮에는 의사로 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1995년 안 후보는 의대 교수직을 그만뒀다. 그는 “교수를 하면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데 지도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면 학생이 불행하지 않겠느냐”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안 후보는 7년간 연구·개발한 자료를 들고 공공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비영리 공익법인’을 세우려고 했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3월15일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만들었다.
설립 초기 안 후보는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25일이 돌아오는 게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1999년 4월26일 체르노빌(CIH)바이러스가 퍼지며 연구소는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2005년 안 후보는 “내 능력을 산업 전반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안랩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밟았다. 2008년 귀국한 안 후보는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 2011년부터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옮겼다.
안 후보가 ‘정치인’으로 부상한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다.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며 순식간에 지지율 50%를 넘나들었지만 당시 박원순 후보를 만나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서울시장 후보직 양보는 그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대선출마에 대해 말을 아끼던 그는 지난 7월19일 책 ‘안철수의 생각’을 내고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국민의 뜻을 듣겠다”며 국민소통 행보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개월 만에 출마를 선언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