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측에서 발표할 때마다 현대·기아자동차를 언급해 놀랐습니다. 닛산 미쓰비시 등의 최고경영자(CEO)도 자리를 함께했는데, 일본 차는 한 번도 예로 들지 않은 것도 의외였고요.”

지난 6, 7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글로벌 오토포럼 2012’에 다녀온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임원의 얘기다. 중국 국제무역추진위원회(CCPIT)와 청두시 정부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세계 자동차업계 관계자 1000여명이 참석, 중국 자동차산업의 미래에 대해 토론했다.

이 임원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현대·기아차의 성장 비결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 힘들었다”고 말했다. “수입차협회 임원인데 본의 아니게 국산차 홍보맨이 된 느낌이 들더군요.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죠.”

‘현대차 배우기’ 나선 중국

그는 수직계열화에 따른 비용 절감 및 품질 향상 노력,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스피드 경영 등 자신이 알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강점을 일일이 설명해줘야 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올해 자동차 수출이 10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며 “우리도 한국처럼 할 수 있다”고 결의를 다졌다. 한국은 1996년 자동차 수출 100만대를 돌파했다.

중국이 국제 행사에서 일본 기업 대신 현대·기아차를 집중 부각시킨 것은 영토 분쟁으로 촉발된 반일 감정 탓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자동차 기술 독립’을 위해 1980년대 말부터 20년 이상 투자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대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폭스바겐 등 해외 업체와 합작법인을 운영하는 중국으로서는 현대·기아차의 급성장 비결이 궁금할 만하다.

“현대·기아차의 속도만큼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게 해외 자동차업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현대 속도’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니 납득이 간다. 2004년 국어 사전에 등록된 이 말은 중국에서 현대차의 빠른 성장세를 뜻한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생산을 시작한 2003년 5만대를 팔았지만, 지난해에는 74만대를 판매했다. 중국 3공장이 최근 가동에 들어가 10년 만에 100만대 생산체제를 갖췄다.

해외에서 탐내는 ‘스피드 경영’

‘현대 속도’의 중심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다. 초스피드 경영은 ‘MK 스타일’이다. 2000년 현대차그룹이 출범한 이후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자동차업계 중 유일하게 철강에서 부품, 완성차까지의 수직계열화 그림을 완성했다. 생산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원자재값 상승, 경기침체 등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현대·기아차가 안방에서 발목이 붙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치권이 문제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순환출자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흔들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현대·기아차만의 강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 모임은 기업들의 손발을 묶는 것도 모자라 ‘경제연좌제’까지 들고 나왔다. 보험·증권 등은 설립 인가 및 대주주 변경 때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고 있는데, 이를 일정 주기(6개월~2년)마다 하자고 한다.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대주주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보험사(특수관계인까지 포함)는 ‘6촌 이내 혈족 관리팀’을 만들어 금융업과는 무관한 주변인을 관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삼성도 금산분리 문제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순환출자 규제는 현대·기아차, 금산분리 강화는 삼성을 겨냥한 ‘표적 입법’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중국이 마냥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건호 산업부 차장 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