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통하는 장하준 캐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삼성그룹 사장단에게 따끔한 충고를 건넸다.

국민의 지원 아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수익을 올린만큼 사회에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이른바 '복지'를 통한 '성장'을 강조했다.

장 교수는 19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사장단회의에 강사로 참석해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장 교수가 삼성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이 국민의 지원 위에서 큰 것은 사실 아니냐"며 "복지가 밑바탕이 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사회적 대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사회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결국 '대기업이 혼자 큰 게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대기업들도 이런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 교수는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주주자본주의'에 의한 재벌 개혁이 아니라 보편적 시민권에 기초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일임을 강조했다.

장 교수는 대기업에 비판적 입장을 가져왔지만,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여타 진보학자들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진보진영에선 재벌기업이 왜곡된 소유구조로 그룹을 지배하는 것에 비판 잣대를 들이댄 반면 장 교수는 이를 역사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인정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재벌에 대한 비판이 강화된 것은 '기업은 주주의 것'이라는 '주주자본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리를 펴는 쪽에서는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왜곡된 소유구조 등을 비판한다는 것.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사람들도 주주자본주의를 내세워 재벌 해체 또는 개혁을 주장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사업다각화는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 기업들에 다 있다"며 "핵심 역량만 강조하면 삼성은 아직도 양복과 설탕만 만들어야 하고, 현대는 길만 닦고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업다각화라는게 기업의 성장 의지 뿐 아니라 정부가 기업에 특정 업종을 떠맡긴 결과"라며 "이제 와서 그걸 나쁘다고 하는 것은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복지와 성장이 함께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인 국가가 바로 그 것. 높은 자살률, 낮은 출산률, 가속화되는 인구 고령화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감당할 방법을 찾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삼성 관계자는 "오늘 강연은 특정 기업이나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다"며 "복지와 성장이 선순환 되기 위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