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온도 최고조 때 발생ㆍ성장…차고 건조한 공기 만나 폭우

제16호 태풍 산바(SANBA)가 강풍과 폭우를 겸비한 '힘센 가을태풍'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산바는 17일 오전 11시30분께 남해안에 상륙한 직후 경남 통영에 순간풍속 초속 39.4m의 바람을 일으켰다.

시속으로 따지면 144㎞다.

사람이 제대로 걷기 힘든 것은 물론 커다란 바위도 날려버릴 수 있는 막강한 바람이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의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서는 오전 한때 순간풍속 초속 43.9m의 강풍이 측정됐다.

역대 가장 강한 태풍으로 꼽히는 2003년 매미(MAEMI)는 남해한 상륙을 전후해 여수에 초속 49.2m, 통영에 43.8m의 강풍을 몰고 왔다.

산바는 이에 비해 바람이 다소 약하지만 목포 초속 37.8m, 부산 34.7m 등의 기록을 작성한 2002년 루사(RUSA)와 비슷한 수준이다.

산바는 바람뿐 아니라 비도 엄청나게 뿌리고 있다.

전날부터 이날 오후 3시까지 제주 산간에는 진달래밭 822.5㎜, 윗세오름 781.5㎜ 등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제주 평지는 399.2㎜, 지리산 뱀사골 346.0㎜, 거창 256㎜, 포항 239㎜, 여수 230.7㎜, 진주 230㎜, 울산 208.5㎜ 등 곳곳에서 벌써 200㎜를 넘는 비가 내렸다.

상륙을 전후해 남해안 지역에는 1시간 동안 50㎜ 안팎의 호우가 쏟아졌다.

이런 집중 강수대는 산바를 따라 경북 내륙과 강원 동해안으로 옮겨가고 있다.

역대 최악의 '폭우 태풍'인 루사는 강릉에 하루 동안 870.5㎜의 물폭탄을 쏟았다.

이는 루사가 전남 고흥에 상륙해 강원 속초 근처의 동해로 빠져나갈 때까지 24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로 느리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산바는 상륙에서 해상 진출까지 8시간 안팎 소요될 것으로 보여 루사만큼의 비를 뿌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남해안과 동해안은 이번 태풍으로 인해 300∼400㎜의 많은 강수량을 기록할 것으로 기상청은 예상하고 있다.

기상청 예보관들은 "원래 가을태풍이 여름태풍보다 무섭다"고 말한다.

가을태풍은 태생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태풍은 고온의 바다가 내뿜는 수증기를 영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데 태풍 발생구역의 수온이 가장 높은 때가 9월 초순부터 중순 사이다.

지난 11일 발생한 산바는 필리핀 동쪽의 고온 수역에서 서서히 북상하며 일주일 가까이 힘을 키워왔다.

많은 비를 동반하는 가을태풍의 위력은 이맘때 우리나라를 자주 찾는 기압골을 만나 더욱 막강해진다.

기압골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태풍이 품은 따뜻한 수증기가 직접 부딪치면서 폭우를 뿌리는 경우가 많다.

현재 산바는 일본 열도 쪽의 북태평양 고기압과 서해상까지 바짝 다가와 있는 영하 6도 이하의 상층 기압골 사이에 난 좁은 통로로 이동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동해안에서는 태풍의 중심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강한 바람이 태백산맥에 걸려 폭우를 뿌리고 바다로 되돌아가 수증기를 흡수한 다음 또 다가와 비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며 "가을태풍은 여름에 오는 태풍보다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