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16일 오전 6시12분
[마켓인사이트] 재무·회계통 '포스트 486'…兆단위 '안방살림'
이인경 MBK파트너스 전무(44)의 회사 공식 직함은 최고재무책임자(CFO)다. 37억달러(약 4조2000억원)를 운용하는 동북아 최대 바이아웃(기업매수) 펀드의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MBK가 투자한 기업 40여곳의 연매출은 총 25조원으로 매출 기준으로 따지면 재계 서열 14위에 해당한다. 그는 싱가포르 테마섹과 국민연금 등 MBK 펀드의 투자자 관리를 총괄하는 중책도 맡고 있다.

사모펀드(PEF)는 여성들에 대한 벽이 높은 업종이다. 여성은 한 명도 없는 국내 PEF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PEF 업계에 CFO로 활동하는 여성 ‘5인방’이 있다. 이들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포스트 486세대’로 재무와 회계 전문 지식을 발판으로 조(兆)단위 자금을 운용하는 PEF의 살림을 총괄하고 있다.

한영혜 보고펀드 상무(43)는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재우 신지하 박병무 대표 등 국내 PEF 시장의 거물 4인이 모여 있는 보고펀드의 CFO다. 삼일회계법인, 법무법인 광장, 하나은행 투자사업본부 등을 거쳐 2006년 보고펀드에 합류했다. 인수 금융과 세무 업무 전반에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회의에 꼭 참석한다는 게 보고펀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혜성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 전무(41)는 최고운용책임자(COO) 역할을 맡고 있다. 1조8000억원 규모의 국내 PEF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PEF 운용에도 관여하고 있어 맥쿼리의 PEF 그룹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 펀드 설립과 자산 운용 및 매각 등 펀드의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해 CFO 역할도 상당부분 맡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PEF 업계 강자로 부상한 IMM PE의 장진희 이사(42)와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의 백미정 상무(42)도 각각 CFO로 활동하고 있다. 장 이사는 삼성SDI, 백 상무는 삼정KPMG 출신으로 연세대와 고려대 92학번 동갑내기다.

이들 5인방은 재무와 회계 분야 전문 지식을 발판으로 PEF업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 전무와 김 전무, 한 상무와 백 상무는 공인회계사 출신이다. 김 전무와 한 상무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유일하게 대기업 출신인 장 이사 역시 삼성SDI에서 국제금융업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어 재무와 회계 실무에 해박하다. 벤처붐이 일었던 2001년 IMM PE의 전신 IMM인베스트먼트로 이직,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PEF 경력으로 따지면 최고참이다.

이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슈퍼맘’들이다. 비정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친목 성격의 모임도 갖는다고 한다. 김 전무는 “대화의 절반가량은 자녀 양육과 교육에 관한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PEF에서 CFO의 핵심 역할은 투자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한 상무는 “투자 대상을 발굴하거나 기업 인수협상을 진행하는 투자 업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빛이 덜 나는 업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 평가는 다르다. 이재우 보고펀드 대표는 “10년에 이르는 펀드 운용기간 동안 투자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꾸려가기 위해서는 리스크 관리 능력과 전략 마인드를 겸비한 CFO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장 이사는 “PEF 업무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전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직업”이라며 “여성 관점에서 보면 블루오션 직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