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vs 23억…자살예방엔 눈감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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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 경찰팀 리포트
4월 중앙예방센터 생겼지만 직원 20명으로 겨우 운영
'사고' 체계적 분석 못해
자살자 정보 모아 연구하는 '심리적 부검' 제도 도입
핀란드 획기적 성과 주목
4월 중앙예방센터 생겼지만 직원 20명으로 겨우 운영
'사고' 체계적 분석 못해
자살자 정보 모아 연구하는 '심리적 부검' 제도 도입
핀란드 획기적 성과 주목
지난 10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2012년도 교통안전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1.26명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한국인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3.5명(OECD 기준)이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3배에 이른다. 자살자 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 2004년부터 최근 7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7년 동안 떨쳐내지 못하고 있지만, 취재 결과 자살 예방을 위한 범국가적 차원의 노력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이웃 일본이 자살 예방을 위해 한 해 3000억원을 쓸 때 우리 정부는 작년에 고작 23억원을 사용했다. 한때 10만명당 50명이 자살했던 핀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장기계획을 세워 자살률을 18.3명으로 낮춘 것과 달리 한국은유족 등의 인터뷰를 통해 확보한 기초적인 자살원인분석 데이터조차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이 우선시되는 과정에서 패자부활전은 사라졌다. 성공신화만을 좇는 사회 분위기에 자살은 패자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애써 외면돼 왔다. 방치된 노인복지와 정글의 법칙에 갇힌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회현상과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받아들여 대책 마련에 나설 때”라며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제도를 도입해 자살률을 크게 낮춘 핀란드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조언했다.
○하루 42명 자살, 패자부활전 사라진 사회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 자살자는 1만5566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42.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심각한 것은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 사망자 중 13%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자살은 사고 등 다른 원인을 제치고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노인 자살도 큰 문제다. 2010년 자살자 1만5566명 중 28.1%(4378명)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전체 평균(33.5명)의 2.6배다. 이는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낮아지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자살률에 대해 명쾌한 진단은 아직 없다. 기초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유족들을 대상으로 사인을 분석한 통계가 거의 유일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적 문제(29.5%)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 △인간 관계(15%) 등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1292달러였던 200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3.6명이었지만 1인당 GNI가 2만562달러인 2010년의 자살률은 되레 33.5명으로 높아졌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정신적 문제’가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연관있다고 보면 비슷한 해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지난 7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이내찬 한성대 교수의 ‘OECD 국가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OECD 34개국의 국민 행복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4.20점으로 뒤에서 세 번째였다.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자살률 증가추세는 정권이 바뀌면서도 조기실직, 부의 양극화, 경쟁심화 등 패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월 예방센터 발족…기초자료 ‘전무’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복지부는 지난 4월에야 서울 방이동에서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정식 출범시켰다. 이마저도 한국자살방지협회에 위탁해 겨우 20명의 직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살예방교육이나 통계청 등의 자살 관련 자료수집이 일상업무다. 올 예산은 복지부의 자살예방 관련 예산 23억원 가운데 13억원 가량이 책정됐다.
이러다 보니 자살예방의 기초자료인 체계적인 원인 분석은 엄두도 못 낸다. 2009년 자살원인을 분석해 자살예방에 활용할 자료 수집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유족들의 저항에 부딪혀 유야무야된 바 있다.
이중규 복지부 복지정신건강 과장은 “그동안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 차원의 자살원인 분석이 부실했던 게 맞다”며 “장기적인 계획은 한 부처로서는 벅차 단기적으로 병원응급실로 실려오는 자살시도자와 독거노인 관리를 통해 자살률을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2008년부터 자체적으로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담과 자살시도 현장에 나가는 등의 일상적인 업무가 전부다. 턱없이 부족한 인원 탓에 자살원인 분석에 ‘예비자살자’들의 ‘무모한 시도’를 막을 자료수집은 역시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작년 서울시자살예방센터가 처리한 연간 상담건수는 2만1354건에 이른다. 올 7월까지 접수된 상담건수도 1만2843건이다. 이를 처리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인 자살예방상담센터 직원은 겨우 12명에 불과하다.
○심리적 부검 도입한 핀란드 자살률 ‘뚝’
전문가들은 심리적 부검이나 생검제도를 적극 도입해 체계적으로 자살원인을 분석한 데이터 축적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한 사람의 정보를 모아 자살의 원인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1934년부터 1940년 사이 뉴욕 경찰 93명이 연쇄자살한 것을 규명하기 위한 전문가 조사를 시작으로 1958년 LA 자살예방센터의 자살조사에서 심리적 부검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심리적 부검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크게 효과를 본 곳은 핀란드다.
핀란드는 20세기 동안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들 중 하나였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자살률은 3배 증가했으며 1990년에는 인구 10만명당 50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핀란드 정부는 5만여명의 전문인력을 동원, 1987년 자살한 1397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핀란드는 2009년 자살률이 10만명당 18.3명으로 내려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한국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2009년부터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시행하면서 심리적 부검도 포함시켰다. 당초 100건의 사례를 수집해 분석할 예정이었으나 유족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총 7건의 사례를 얻는 데 그쳤다. 결국 정부의 심리적 부검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가족들의 반대에 직면하는 심리적 부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심리적 생검(phycological biopsy)’이다. 자살시도자의 치료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게 된 원인을 정신상태 평가양식에 기록하고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자살시도 원인을 심층 분석해 자살예방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서울시는 심리적 부검과 생검을 내년에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1차 심리적 부검 도입 실패 이후 이렇다 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하 회장은 “선진국들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심리적 부검이나 생검 모두 자살 예방 대책 수립을 위한 최소한의 기초 작업으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7년 동안 떨쳐내지 못하고 있지만, 취재 결과 자살 예방을 위한 범국가적 차원의 노력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이웃 일본이 자살 예방을 위해 한 해 3000억원을 쓸 때 우리 정부는 작년에 고작 23억원을 사용했다. 한때 10만명당 50명이 자살했던 핀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장기계획을 세워 자살률을 18.3명으로 낮춘 것과 달리 한국은유족 등의 인터뷰를 통해 확보한 기초적인 자살원인분석 데이터조차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이 우선시되는 과정에서 패자부활전은 사라졌다. 성공신화만을 좇는 사회 분위기에 자살은 패자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애써 외면돼 왔다. 방치된 노인복지와 정글의 법칙에 갇힌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회현상과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사회의 병리현상으로 받아들여 대책 마련에 나설 때”라며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제도를 도입해 자살률을 크게 낮춘 핀란드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조언했다.
○하루 42명 자살, 패자부활전 사라진 사회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 자살자는 1만5566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42.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심각한 것은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 사망자 중 13%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자살은 사고 등 다른 원인을 제치고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노인 자살도 큰 문제다. 2010년 자살자 1만5566명 중 28.1%(4378명)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전체 평균(33.5명)의 2.6배다. 이는 노인 자살률이 전체 자살률보다 낮아지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자살률에 대해 명쾌한 진단은 아직 없다. 기초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유족들을 대상으로 사인을 분석한 통계가 거의 유일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적 문제(29.5%) △질병(23.3%) △경제적 어려움(15.7%) △인간 관계(15%) 등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1292달러였던 200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3.6명이었지만 1인당 GNI가 2만562달러인 2010년의 자살률은 되레 33.5명으로 높아졌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자살의 직접적인 이유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정신적 문제’가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연관있다고 보면 비슷한 해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지난 7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이내찬 한성대 교수의 ‘OECD 국가 삶의 질 구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OECD 34개국의 국민 행복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구한 결과 한국은 10점 만점에 4.20점으로 뒤에서 세 번째였다.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자살률 증가추세는 정권이 바뀌면서도 조기실직, 부의 양극화, 경쟁심화 등 패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월 예방센터 발족…기초자료 ‘전무’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복지부는 지난 4월에야 서울 방이동에서 중앙자살예방센터를 정식 출범시켰다. 이마저도 한국자살방지협회에 위탁해 겨우 20명의 직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살예방교육이나 통계청 등의 자살 관련 자료수집이 일상업무다. 올 예산은 복지부의 자살예방 관련 예산 23억원 가운데 13억원 가량이 책정됐다.
이러다 보니 자살예방의 기초자료인 체계적인 원인 분석은 엄두도 못 낸다. 2009년 자살원인을 분석해 자살예방에 활용할 자료 수집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유족들의 저항에 부딪혀 유야무야된 바 있다.
이중규 복지부 복지정신건강 과장은 “그동안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 차원의 자살원인 분석이 부실했던 게 맞다”며 “장기적인 계획은 한 부처로서는 벅차 단기적으로 병원응급실로 실려오는 자살시도자와 독거노인 관리를 통해 자살률을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2008년부터 자체적으로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담과 자살시도 현장에 나가는 등의 일상적인 업무가 전부다. 턱없이 부족한 인원 탓에 자살원인 분석에 ‘예비자살자’들의 ‘무모한 시도’를 막을 자료수집은 역시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작년 서울시자살예방센터가 처리한 연간 상담건수는 2만1354건에 이른다. 올 7월까지 접수된 상담건수도 1만2843건이다. 이를 처리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인 자살예방상담센터 직원은 겨우 12명에 불과하다.
○심리적 부검 도입한 핀란드 자살률 ‘뚝’
전문가들은 심리적 부검이나 생검제도를 적극 도입해 체계적으로 자살원인을 분석한 데이터 축적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한 사람의 정보를 모아 자살의 원인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1934년부터 1940년 사이 뉴욕 경찰 93명이 연쇄자살한 것을 규명하기 위한 전문가 조사를 시작으로 1958년 LA 자살예방센터의 자살조사에서 심리적 부검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심리적 부검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크게 효과를 본 곳은 핀란드다.
핀란드는 20세기 동안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들 중 하나였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자살률은 3배 증가했으며 1990년에는 인구 10만명당 50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핀란드 정부는 5만여명의 전문인력을 동원, 1987년 자살한 1397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핀란드는 2009년 자살률이 10만명당 18.3명으로 내려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한국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2009년부터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시행하면서 심리적 부검도 포함시켰다. 당초 100건의 사례를 수집해 분석할 예정이었으나 유족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총 7건의 사례를 얻는 데 그쳤다. 결국 정부의 심리적 부검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가족들의 반대에 직면하는 심리적 부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심리적 생검(phycological biopsy)’이다. 자살시도자의 치료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게 된 원인을 정신상태 평가양식에 기록하고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자살시도 원인을 심층 분석해 자살예방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서울시는 심리적 부검과 생검을 내년에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1차 심리적 부검 도입 실패 이후 이렇다 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하 회장은 “선진국들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심리적 부검이나 생검 모두 자살 예방 대책 수립을 위한 최소한의 기초 작업으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