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의 생명이 다했다. 이제는 자율 규제의 가능성을 논의할 차례다."

소위 '인터넷 실명제'로 불리는 인터넷 본인 확인제가 지난달 위헌 판결을 받은 뒤 자율 규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단법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인터넷 제한적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 이후 자율규제 방향성 모색'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기구는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야후코리아 등 국내 주요 포털업체가 회원사로 있다.

이날 세미나에선 국내 대표 포털사들의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이후 대응책이 구체적으로 발표되고 규제 기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사용자들의 댓글 자정 능력을 통해 전반적인 댓글 문화가 바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포털사들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규제를 유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다음은 일반 댓글보다 소셜댓글을 우선 노출할 예정이다. 소셜댓글이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아이디로 특정 사이트의 게시판에 댓글을 달면 본인의 SNS에 관련 댓글과 함께 URL이 함께 기재되는 서비스다. 자신이 쓴 댓글이 본인의 SNS와 연결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정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NHN의 경우 사용자 스스로가 쓴 댓글을 모아서 볼 수 있는 기능을 통해 이용자들의 자기 평가를 유도한다.

악플(악성 댓글)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응책도 마련했다. 다음은 신고처리 간소화 시스템을 도입한다. NHN은 모바일을 통해 유해 댓글을 손쉽게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을 어플리케이션(앱)에 추가한다. 또 SK컴즈는 신고된 댓글을 자동으로 막고, 관리자 확인을 거쳐 재게시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할 계획이다.

댓글 모니터링 인력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총 500여명 수준의 모니터링 인력을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와 다음은 댓글 관리 인력을 2배로 증원한다. 포털3사는 스팸 및 유해물에 대한 필터링 시스템 고도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한종호 NHN 정책실 이사는 "모니터링 인력 운영은 매우 고비용 구조" 라며 "규모가 큰 포털사는 유지가 가능하지만 신생 포털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 본인 확인제 폐지 부작용에 대비한 모니터링 인력은 업계 진입 장벽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포털사의 책임이 커지면서) 모니터링을 더 강하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공적 규제의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결국 사적 규제의 과잉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명예훼손 등 인터넷 본인확인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담당할 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를 비롯해 분쟁조정역할을 할 민간기구 마련 등의 안이 나왔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이번 위헌 결정에 대한 우려가 사회에 팽배해 있다" 며 "그러나 본인확인제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규제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규제환경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돌아왔다고 평가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이지현 기자 edi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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