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시 둔포면의 배 과수원 입구에 들어서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름 전 태풍 ‘볼라벤’으로 떨어진 배들이 아직도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갈라지고 문드러진 배들 사이로 나방과 벌들이 날아다녔다.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린 배들도 상처투성이였다.

과수원 주인 차명규 씨는 12일 “20년 넘게 배농사를 지어왔지만 이번처럼 낙과 피해가 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차씨의 과수원을 포함해 이 지역 배 농가들은 40~50%의 낙과 피해를 입었다. 70~80%의 낙과 피해를 입은 전남 나주보다는 덜하지만 늦은 장맛비로 당도가 떨어져 상품성도 낮아졌다. 차씨는 “올 추석 배 생산량은 작년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며 “가격이 올라도 농가엔 엄청난 타격”이라고 설명했다.

전남·충청지역의 주요 배 산지들이 태풍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표적 제수용 과일인 배 값도 크게 오를 전망이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배 7.5㎏ 한 상자 경락가는 이날 3만5933원으로 작년 이맘때(2만6537원)보다 35.4% 올랐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제수용품 수요가 늘어나면 더 오를 전망이다.

유통업체들도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바이어들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 배 산지를 돌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황성재 이마트 과일담당 바이어는 “상대적으로 태풍 피해를 덜 입은 경북 상주·김천, 전북 전주 등지를 매일 돌며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마트는 태풍 피해가 적었던 유기농 배, 봉지를 씌우지 않은 무봉지 배 등 프리미엄 배의 비중을 20%가량 확대할 계획이다.

경북 상주에서 유기농 배를 재배하는 박오식 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유기농연맹(IFOAM) 인증을 받았다.

박씨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조개껍데기, 멸치가루 등으로 직접 만든 퇴비로 배를 키운다”고 말했다. 무봉지 배는 병충해에 취약해 생산량이 적은 반면 햇볕을 오래 받아 일반 배보다 당도가 1~2브릭스 정도 높다.

프리미엄 배는 개당 6000~7000원 선으로 일반 배보다 10~20%가량 비싸다. 황 바이어는 “배 값이 전체적으로 올라 예년보다 프리미엄 배와 일반 배의 가격 격차가 줄었다”며 “프리미엄 배의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추석용 일반 배 가격은 개당 5000원으로 작년보다 20% 정도 오를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신안 바닷가 배’(9개)를 8만원, ‘무봉지 배’(9개)를 5만7800원에 예약 판매하고 있다.

아산·상주=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