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호남석유화학 등 국내 화학기업의 중국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시장 점유율은 2008년만 해도 28%로 1위였다. 9일 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말까지 중국 HDPE 시장 점유율은 16%로 추락했다. 3년6개월 사이 12%포인트 떨어졌다. 원유를 가공해 만드는 HDPE는 일회용 쇼핑백, 용기, 파이프 등에 주로 쓰인다.

중국에서 한국 화학기업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중동의 물량 공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HDPE 물량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2008년 21%에서 작년 48%로 상승했다. 올 들어 지난 7월 말까지는 절반을 훌쩍 뛰어넘어 55%에 달했다.

국내 화학업체들이 ‘텃밭’처럼 여겨온 중국 석유화학 시장에서 중동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다. 낮은 가격으로 무장한 중동 ‘오일 파워’의 역습이라는 말까지 업계에서 나돈다.

원유라는 원료 제공에 만족했던 중동 국가들이 제품 제조에 나서면서 한국의 주력 수출시장을 위협하고 산업 주도권마저 가져갈 태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70년대 사우디를 중심으로 중동 각국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중장기 경제개발 계획과 40년 프로젝트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올 1~8월 석유제품 수출액(잠정)은 362억4000만달러로 반도체보다 많다.

포장용 필름, 자동차 내·외장재, 가전제품 부품 등에 사용하는 PP(폴리프로필렌)가 역전당한 것은 지난해다. 2008년 35%로 중국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한국은 올해 24%까지 떨어졌다. 4년 전만 해도 한국, 동남아, 대만에 이어 9%로 4위권이던 중동은 올해 29%로 1위에 올랐다. 폴리에스터 원료인 EG(에틸렌글리콜) 역시 중동 물량이 전체의 60%를 차지하며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주력 시장이 흔들리며 한국 화학기업들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글로벌 불황까지 겹쳐 LG화학의 영업이익은 40.2%, 한화케미칼은 82.5%, 호남석유화학은 79.7% 급감했다.

중동 국가들이 원유 정제 기술까지 확보해 본격 가동에 나서면 한국 정유사들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상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중동 물량이 급격히 밀려들면서 한국 기업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