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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데스크] 금융 포퓰리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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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원 금융부장 iklee@hankyung.com
    금융권이 요즘처럼 탐욕의 집단으로 지탄받고 개혁 대상으로 거론된 적이 없었다. 재벌을 두고 빚어진 반기업 정서 못지않다.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보다 수익을 무리하게 챙기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영세사업자들에게 가맹점 수수료를 과다하게 부과했다. 생명보험사들은 변액보험 수익률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은행들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으로 대출자에게 더많은 이자를 물렸다는 의혹을 샀다. 4대 시중은행은 감사원으로부터 3년간 가산금리를 조정해 총 20조원 이상을 부당하게 챙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담보설정비뿐 아니라 대출과정에서 수십 가지 명목의 수수료를 챙겼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은행 서민금융 진정성 부족


    은행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진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의 CD금리 담합 조사는 허방을 짚은 것이고, 가산금리부과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용리스크를 반영했을 뿐이다. 은행들이 과도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합리화하려는 꿰맞추기식 비판이라고 반발한다.각종 수수료도 관행에 의한 것일 뿐 왜 지금 문제가 되는지 되묻기도 한다.

    물론 내놓고 이런 말을 하는 간 큰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없다. 일단 금융권 정서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다. 대선을 앞두고 ‘금융 포퓰리즘’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고개를 숙이고 비판 여론을 가라앉히자는 것이다. 은행들이 앞다퉈 10%대의 서민금융 지원책을 잇따라 내놓은 이유도 여론을 가라앉히려는 취지가 강하다. ‘프리 워크아웃’이란 제도도 비슷한 취지에서 잇따라 도입했다.

    등떠밀려 마지 못해 하는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차피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닌 마당에 진정성을 굳이 강조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비판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할 뿐 처절한 반성은 엿보이지 않는다.

    금융사에 대한 비판이 여론몰이 성격의 포퓰리즘으로 흐르면서 합리적인 논쟁을 거치지 않은 탓이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 특정인 혹은 집단이 순식간에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린다. 이번에는 정부 면허를 받아 남의 돈으로 떼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임직원에게 고액 연봉을 준 은행이 표적이 됐다.

    규제 강화될 것에 대비해야

    금융포퓰리즘은 금융사에 대한 분노를 자극한다. 필연적으로 규제라는 족쇄를 양산하게 된다. 물론 필요한 규제는 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사의 창의성이 말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심하면 정부가 직접 가격결정에 관여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카드수수료를 낮추고 유무형 압력을 통해 각종 금리를 낮추는 게 그런 사례다.

    정부가 시장 가격에 관여할수록 금융사와 고객들 간 신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이 신뢰를 잃으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신뢰와 평판은 감독당국이 아닌 은행이 시장에서 직접 얻어내야 하는 가치다. 어떤 경우에도 정부 규제가 기업 혹은 개인의 선의를 대체할 순 없다.

    포퓰리즘에 기댄 징벌적 규제는 화난 군중에게 일시적인 쾌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은행을 진정으로 변하게 할 수는 없다.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게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은행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용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대선을 앞두고 규제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납짝 엎드려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리지 말고 이참에 소비자 중심의 질적 변신을 꾀해야 한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변화를 꾀하는 금융사 CEO가 필요한 때다.

    이익원 금융부장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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