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바다, '물의 시집'에서 출렁이다
시인 문정희(65·사진)는 지난해 가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갔다. 등단한 지 올해로 벌써 43년. 오랫동안 당당하고 능동적인 시적 언어로 여성과 생명의 감각을 표현해온 시인은 그곳에서 시집 《카르마의 바다》(문예중앙)를 낳았다. 흐르고 흐르는 물로 가득찬 도시의 생명을 그만의 언어로 담아냈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태어난 시집 또한 시인의 음성으로 표현된 물과 흐르고 출렁이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베네치아는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들뜨는 관광지. 하지만 문 시인에게는 그 도시의 생명인 물마저도 슬픔으로 가득 찬 바다다. 자신의 속살을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존재하는 슬픈 도시다. 그는 자신의 끝도 없는 고독과 슬픔도 그 물빛에 투영시킨다.

‘해골과 남루와 유랑의 불빛 출렁이는/밤바다를 생포하면 알 수 있을까//지옥보다 외로운/내 안의 내가 보일까’ (‘짐승 바다’ 부분)

그에게 삶의 본질은 상처다. 그 상처는 소외나 고통, 가난이 아닌 외로움과 고독으로부터 비롯된다.

“해가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혼자 시소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건너편에 타고 있는 건 다름아닌 어둠이죠. 이때 느끼는 것이 비감(悲感)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슬픔과 물은 하나인데, 그는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야 할 ‘카르마(업보)’로 받아들인다. 시집 제목 ‘카르마의 바다’는 그렇게 나왔다. 그는 시 ‘진흙탕’에서 ‘나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눈물이라고 생각했지’라며 슬픔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지막에는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곧 연꽃이 필 거라 어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며 자신이 받아들인 업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희미하게 내보인다. 그에게 극복을 시도하게 하는 원동력은 당연히도 시를 쓰겠다는 ‘출렁이는’ 의지다.

‘어디든 솟는 물은 나의 잉크, 출렁이는 상처, 으르렁거리는 표범이니/생애의 양식 충분하다/유배가 풀리더라도/결코 아는 길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물의 초대’ 부분)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