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바다, '물의 시집'에서 출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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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집 '카르마의…' 출간
베네치아는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들뜨는 관광지. 하지만 문 시인에게는 그 도시의 생명인 물마저도 슬픔으로 가득 찬 바다다. 자신의 속살을 사람들에게 내보여야 존재하는 슬픈 도시다. 그는 자신의 끝도 없는 고독과 슬픔도 그 물빛에 투영시킨다.
‘해골과 남루와 유랑의 불빛 출렁이는/밤바다를 생포하면 알 수 있을까//지옥보다 외로운/내 안의 내가 보일까’ (‘짐승 바다’ 부분)
그에게 삶의 본질은 상처다. 그 상처는 소외나 고통, 가난이 아닌 외로움과 고독으로부터 비롯된다.
“해가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혼자 시소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건너편에 타고 있는 건 다름아닌 어둠이죠. 이때 느끼는 것이 비감(悲感)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슬픔과 물은 하나인데, 그는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야 할 ‘카르마(업보)’로 받아들인다. 시집 제목 ‘카르마의 바다’는 그렇게 나왔다. 그는 시 ‘진흙탕’에서 ‘나는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눈물이라고 생각했지’라며 슬픔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지막에는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곧 연꽃이 필 거라 어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며 자신이 받아들인 업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희미하게 내보인다. 그에게 극복을 시도하게 하는 원동력은 당연히도 시를 쓰겠다는 ‘출렁이는’ 의지다.
‘어디든 솟는 물은 나의 잉크, 출렁이는 상처, 으르렁거리는 표범이니/생애의 양식 충분하다/유배가 풀리더라도/결코 아는 길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물의 초대’ 부분)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