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암흑기, 대한민국 고액자산가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머문지 오래고, 부동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경제 저성장 기조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은 그동안 자신만의 재테크 경험과 노하우를 앞세워 거센 풍파를 헤쳐나가고 있다.
<한경닷컴>은 자산 20~30억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들의 자산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빈사 증시 생존전략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증시 침체기에 한국의 슈퍼리치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어떻게 지켜냈고, 어떤 금융상품에 주목했는지, 그 투자비법을 10회에 걸쳐 공개한다. <편집자 주>

제15호 태풍 '볼라벤'에 이어 제14호 태풍 '덴빈'이 한반도에 상륙, 큰 피해가 우려되던 지난달 30일 오후. 태풍으로 인한 강풍과 폭우로 참가자가 적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수십명의 자산가들이 '세제 개정안' 2차 세미나를 듣기 위해 서울시 중구 을지로 동양증권빌딩 5층에 있는 W프레스티지에 모였다. 이보다 일주일 앞서 열린 1차 세미나에 이어 성황을 이룬 것이다.

최근 고액 자산가들의 세금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세금은 고액 자산가들이 재테크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다. 자칫하면 수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물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양증권은 이 같은 자산가들의 의중을 꾀뚫고 'PB(프라이빗뱅크) 지원팀'이라는 지원부서에 국세청 출신 세무사 1명을 포함해 총 3명의 세무사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세법 개정에 따른 절세 방안에 대한 세미나를 잇따라 열어 자산가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 자산가, '절세'에 관심 많아…방카·물가연동채 주목

자산 5200억원 가량으로 동양증권 간판 PB 점포인 W프레스티지 강북센터를 맡고 있는 김정환 센터장(사진)은 "고액자산가들은 절세에 관심이 많다"며 "수익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소 10억원 이상을 맡기는 이곳 자산가들의 평균 연령은 60세로 다른 PB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보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김 센터장은 "작년말부터 절세상품들이 조만간 없어지거나 줄어들고 앞으로는 금리가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데 컨센서스가 모여 2012년에는 방카슈랑스 상품에 집중하면서 절세하는 방안으로 접근해 왔다"며 "자산가들은 지난 6월까지 방카슈랑스와 물가연동국채를 많이 샀다"고 전했다.

그는 "세제 개편안이 나오면서 관련 상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며 "세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이니까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제 개편으로 금융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연간 이자와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 4000만원 이상에서 3000만원 이상으로 줄어듬에 따라 즉시연금, 물가연동국채, 10년 장기채 등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절세를 위해 일정부분 주식 편입도 늘리기를 권하고 있다.

◆ 주식 투자도 '절세용'

지난 2010년 김 센터장은 한번도 주식 투자를 해 본 경험이 없는 70대 자산가 A씨에게 주식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자산 규모가 너무 커서 가만히 있어도 이자 소득에 대한 세금을 상당액 내야 해 주식 투자로 이자 수익 규모를 줄여 세금을 줄이고 투자 수익금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언대로 A씨는 2010년 자문사 일임 계약을 통해 1년만에 30% 가량 수익을 냈다. 처음 주식 투자의 과실을 맛 본 A씨는 수익금은 빼고 원금만 재투자하라는 김 센터장의 조언을 무시하고 전체 자금을 재투자했다. 또다시 1년이 지난 7월 수익률은 12%로 줄어든 다음 환매했지만 A씨는 '절세'와 '수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는데 성공했다.

그는 "(A씨가) 처음 주식에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그 당시 키 포인트가 됐던 게 '절세'였다"며 고객들에게 주식 비중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고 했다.

금융시장의 침체가 오래 갈 것으로 본다는 김 센터장도 당분간은 주식시장의 상승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 시장의 추세가 아직 꺾이지 않았고 경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며 "미국 등 전세계 증시가 전고점에 도달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 증시도 전고점을 시도할 것으로 보는데 그때까지는 주식 포지션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동성이 주가를 이 만큼 올려놨다. 여기서 더 오르기 위해서는 실적이 받혀 줘야 하는데 만족할 만한 수치가 나오지 못한다면 투자성 상품을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 적립식펀드·저축보험 유망 "꾸준히 불입…축적되는 게 중요"

김 센터장은 고액자산가 자녀들에게 적립식 펀드, 저축보험, 연금보험 등을 추천한다고 한다.

그는 "증권산업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게 적립식 펀드"라며 "꾸준히 불입해서 내 돈이 축적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액티브 펀드보다는 인덱스 펀드가 유망하다고 했다.

다만 무작정 장기로 투자하기 보다는 일정기간 투자하고 이후 또다시 적립식으로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3~5년 정도 적립식 펀드 투자를 통해 투자금이 5000만원 정도로 불었다면 일단 전액 환매해서 CMA(종합자산관리계좌) 등에 넣어두고 2년에 걸쳐 적립식 펀드에 불입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고 남은 기간 동안 자금을 유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 센터장은 기자에게도 저축보험에 가입하라고 조언했다. 저축보험은 입출금이 자유롭다. 중도인출이 가능한 저축보험의 경우 언젠든지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주목받는 상품이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chs879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