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 정책연구용역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의 절반 이상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세금이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용역 절반만 정책 반영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정부정책연구 종합관리시스템’(프리즘)에 따르면 정부 부처가 지난해 발주한 연구용역비는 1811억원으로, 2006년(1343억원)에 비해 34.8% 증가했다. 발주 용역 건수도 2006년 1884건에서 지난해 2528건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정책 수립의 전문성 강화와 보다 면밀한 타당성 검증을 위해 국책·민간 연구소 등의 용역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게 행안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연구용역이 정책에 실제로 활용되는 비율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용역활용은 ‘법령 재·개정’ ‘제도개선 및 정책반영’ ‘정책참조’ ‘미등록’으로 구분된다. 이 중 실제로 정책에 활용되는 것은 ‘법령 재·개정’과 ‘제도개선 및 정책반영’뿐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연구용역의 정책 미반영률은 2006년 36.%에서 지난해 50.7%로 크게 증가했다. 정부가 지난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의 절반 이상이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 셈이다.

행안부 행정제도과 관계자는 “정책참조도 말 그대로 정책에 참조하는 데 썼기 때문에 예산을 낭비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지난 2월 감사에서 기획재정부가 발주한 정책용역 일부가 단순 정책참조로만 쓰이면서 예산을 낭비했다고 적시한 바 있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부처에서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무작정 용역을 발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발주 초기부터 해당 용역의 필요성에 대해 철저히 검토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의계약 비중도 70%에 육박

연구용역 선정 과정에서 수의계약 비중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 공공기관이 용역을 발주할 때 기본적으로 경쟁입찰을 하고, 금액이 5000만원 이하거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의계약이 인정된다. 하지만 지난해 완료된 연구용역 2197건 중 수의계약은 67.8%인 1489건에 달했다. 2006년 83.3%에선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수의계약 비중이 경쟁입찰에 비해 훨씬 높다. 지난해 기준으로 수의계약 비중이 90% 이상인 정부기관도 외교통상부, 보건복지부 등 9곳에 달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경쟁입찰을 하는 게 원칙인 건 맞지만 용역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고 경험이 축적된 기관과 계약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A부처 고위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들이 그동안 계약해 온 특정 연구기관의 요청을 뿌리치기 어렵다”며 “기존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 같은 문제점이 끊임없이 지적되자 행안부는 뒤늦게 부처별 연구용역 점검 결과를 내년도 부처별 예산 편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도 매년 연구용역 발주 건수가 늘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정책 반영률조차 집계가 안 되는 지자체 역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경우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연구용역의 정책 반영비율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