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너무나 잘 알려진 시지만 읽을 때마다 여운이 남습니다. 세상 모든 헤어짐이 이 시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인과의 이별이라면 섭섭하지만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영별(永別)이라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렇게 헤어진다면 돌아서는 마음이 조금은 편할 텐데요.
그럼에도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이길, 그것도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이길 바라는 건, 이별을 긍정하며 극복하는 것이겠지요. 헤어졌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도 진한 향기로 곁에 남아 있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추억과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