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세종시 가기 전 과천 식당 외상 갚아라"
기획재정부 A과(課) 직원들은 요즘 과 회식을 중단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어쩌다 중국집에 가도 절대 탕수육 등 요리는 시키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다. 과 예산을 절감해 외상값을 갚기 위해서다.

올 연말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정부과천청사 인근 식당에 갚아야 할 외상값은 250만원. 하지만 이렇게 해도 외상값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과비가 월 50만원 안팎에 불과한 데다 가끔 야근이라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지출이 늘기 때문이다. A과장은 “결국 100만원 정도는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A과뿐 아니다. 부처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부과천청사는 요즘 ‘외상값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올해 말 세종시로 이사 가는 중앙부처는 모두 6개. 청와대는 최근 이들 부처에 무조건 외상값을 갚은 뒤에 세종시로 이전할 것을 지시했다.

가장 강도높은 처방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농림수산식품부. 부처의 총무 역할을 하는 운영지원과가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각 과로부터 외상값 상환계획을 받아 매달 이행 실적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각 과에 ‘추가 외상 금지, 회식비는 당일 처리’ 지침을 내려놓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직원 간 식사나 회식 때 각자 먹은 만큼 지불하는 ‘n분의 1’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사 이동으로 새로운 직원이 오거나 기존 직원이 나갈 때도 가급적 저녁 회식은 삼가고 점심으로 때운다”며 “이런 방법들을 통해 대다수 과가 외상값을 거의 갚았다”고 말했다.

과별로 ‘외상값 돌려막기’를 하기도 한다. 정부 관계자는 “각 국마다 총괄과가 있는데 여기는 다른 과보다 예산이 더 많다”며 “불가피하게 회식할 때는 총괄과 이름으로 외상을 달고 먹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부처마다, 과마다 아직도 외상값이 적지 않게 쌓인 곳이 많다. 정부 부처의 한 과장급 간부는 “새로 생긴 과는 큰 문제가 없지만 오래된 과는 100만~200만원가량의 외상을 진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청사 인근 식당들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정부 부처들이 세종시로 옮겨가면 매출이 줄어들 게 분명한 데다 자칫하면 외상값마저 떼일 수 있어서다. 과천 인근의 식당 주인은 “외상값을 받으러 세종시에 분점을 차리겠다는 음식점도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고 전했다.

주용석/김유미/김진수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