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경제에 연이어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스페인 은행의 월간 예금 유출액은 사상 최대치로 치솟았다. 경제성장률은 3분기 연속 뒷걸음쳤다. 다음달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 매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스페인은 국가 차원의 전면적 구제금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 자금 유출 가속화

벼랑끝 몰린 스페인 경제, 전면 구제금융 못피할듯
ECB가 28일(현지시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스페인 은행권에서는 전체 예금액의 5%인 740억유로(약 105조원)가 빠져나갔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월간으로 가장 큰 액수다. 지난 1년간 스페인 은행 잔액의 10.9%가 사라졌다. 현재 잔액은 약 1조5090억유로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스페인 은행권 상황은 다른 재정위기 국가들보다도 심각하다. 그리스와 아일랜드 은행의 7월 잔액은 전달 대비 소폭 상승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큰 변화가 없었다. 투자자들이 스페인의 미래를 그리스나 포르투갈보다 더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스페인 정부 관계자는 “펀드 만기와 세금 납부 시즌이 겹치면서 일시적으로 자금 이탈이 늘어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자금 유출은 전체 예금액의 1.5% 수준이었다.

줄리언 캘로 바클레이즈캐피털 애널리스트는 “예금 이탈 속도가 분명히 빨라졌고 그만큼 스페인 은행들의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채 매입 없으면 전면 구제금융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통계청은 이날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각각 -0.3%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3분기 연속 경기침체가 이어졌다. 소비지출이 전 분기 대비 1% 이상 줄어들며 발목을 잡았다. 정부의 긴축정책 때문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페르난도 히메네스 라토레 재무차관은 “올해 하반기 최악의 경기침체가 몰아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ECB가 이날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은행이 갖고 있는 자국 국채 규모는 7월 76억유로 감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페인 은행들이 ECB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에서 빌린 돈으로 산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ECB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LTRO를 통해 스페인에 3150억유로를 빌려줬다. 이 돈의 대부분은 자국 국채 매입에 쓰였다. 은행들이 국채를 다시 시장에 풀면 국채 금리는 높아지고 스페인의 자금 조달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ECB가 다음달 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국채 매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스페인은 전면 구제금융을 피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독일 외무차관 출신의 외르크 아스무센 ECB 집행위원은 “유로화를 지키기 위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FT는 ECB 관계자들을 인용, “국채 매입 재개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