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 흥행 이유 뭘까…3040이 영화 호황 이끌었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웃사람’이 개봉 6일 만인 지난 27일 현재 120만명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사극 코미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개봉 19일 만에 415만명을 기록했다. 두 영화의 흥행은 1000만 영화 ‘도둑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1000만 영화가 다른 영화의 관객까지 빨아들였던 예전 영화시장과 달라진 것.

한국 영화는 연초부터 ‘댄싱퀸’(402만명)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468만명) ‘내 아내의 모든 것’(458만명) ‘건축학개론’(410만명) ‘연가시’(445만명) 등 400만이 넘는 영화가 줄줄이 이어졌다.

김의석 영화진흥위원장은 “연말까지 영화 관람객 수가 1억7000만명에 이를 전망”이라며 “한국 영화 최전성기였던 1960년대 후반의 연간 관객 수와 맞먹는 호황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30~40대로 관객층 확대

영화 소재가 다양해져 관객 층이 넓어졌다. 특정 장르로 쏠림현상이 일어나 공멸하던 예년 패턴에서 벗어났다. 사극, 재난영화, 로맨틱코미디, 멜로, 범죄영화, 법정드라마 등이 중년층까지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올해 흥행작들의 30대 이상 예매율은 10대와 20대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도둑들’은 10대와 20대의 예매 비율이 27%인 데 비해 30대 이상은 73%였다. 노골적인 베드신이 나오는 ‘후궁’은 22% 대 78%로 격차가 더 컸다.

○B급 장르가 주류로 부상

관객들의 취향도 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메시지와 이야기를 중시하던 데서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도둑들’ ‘이웃사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모두 재미를 앞세운 소위 ‘B급’ 장르영화다. B급 장르영화는 메시지와 감동을 강조하는 주류 A급 장르영화와 달리 저급한 욕설과 싸움, 범죄 등을 테마로 재미를 추구한다. ‘도둑들’은 10명의 도둑들이 다이아몬드를 탈취하는 이야기이고 ‘이웃사람’은 사이코패스와 동네 사람들 간의 ‘살인 게임’을 다뤘다. 이들은 육두문자를 앞세운 대사와 피 튀기는 싸움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연쇄살인극도 왜 살인을 하느냐고 묻기보다는 살인 게임이 주는 긴장감 자체에 초점을 둔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도둑들’은 비주류적 감수성이 주류가 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전통적인 장르영화보다는 재기발랄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기에는 영화가 호황

한국 영화의 중흥기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시작됐듯, 올해 영화시장의 호황도 경기불황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영화처럼 8000~9000원으로 두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는 찾기 어렵다. 멀티플렉스의 확산도 한몫했다. 멀티플렉스가 주택가에 생기면서 온가족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 지명혁 국민대 영화학과 교수는 “폭염에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입장료가 낮고 접근하기 쉬운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