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 이후…제약 영업맨, 新 서바이벌 전쟁
국내 A제약사 영업사원 B씨. 지방 모 대도시에서 처방량이 많은 C병원을 뚫기 위해 고심하던 그는 묘안을 짜냈다. C병원장 소유 과수원에서 매일 잡초를 뽑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그의 눈에 띄는 작전이다. 항상 C병원장 차가 출퇴근할 때를 맞춰서다. 사흘째, 낯선 이를 목격한 C병원장이 차에서 내려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C병원장에게 달려가 넙죽 엎드려 사정을 설명하는 B씨. 다음날부터 A사는 C병원에 약을 대량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 사례는 요즘 A사에서 ‘영업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다.

영업과 리베이트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제약업계 영업사원들의 ‘생존 게임’이 눈물겹다. 지난 4월 정부가 약가 인하를 시행한 이후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육탄전’의 연속이다. 약값 인하분만큼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 거래처를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제약 영업맨, 新 서바이벌 전쟁
요즘 제약업계에서는 능력있는 영업사원의 조건으로 ‘마음이 통하는’ 의사 3~4명을 확보했느냐를 본다. 의사의 마음을 얻으려면 지근거리에서 ‘심기 경호’를 해야 한다. 담당하는 병원 의사가 해외 출장을 갈 때 차를 대신 몰아주는 것은 물론 휴가지에서 레저를 즐길 때 자녀들을 돌봐주고, 때론 가정교사도 하는 식이다. TV나 컴퓨터, 에어컨 수리 등도 마찬가지다.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건강보험급여 청구서 등 서류를 떼는 일도 도맡고 세무지식을 배워 절세 테크닉을 알려주거나, 주식 정보도 제공한다. 등산, 당구, 조기축구, 수영, 맛집 방문 등 레저와 취미를 함께하는 것은 고전이다. 한발 더 나아가 결혼기념일과 가족 생일 등을 챙길 정도면 ‘성공’한 것으로 통한다. 의사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이른바 ‘간택 영업’이다.

제약 영업 여건이 빡빡해진 것은 2010년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리베이트 쌍벌제(금품을 주고받는 쪽을 함께 형사 처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관련법이 개정돼 의약품 납품이나 판촉 등을 목적으로 주고받는 모든 금품 수수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단 학술대회나 제품설명회 등을 할 때 의사 1인당 1회 10만원 이하의 숙식비나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을 제외했다. 이 제도 시행 전까지는 리베이트를 준 쪽만 행정·형사 처벌을 받고, 의사는 설령 수억원어치를 접대받더라도 행정 처분 외에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접대받는 것을 꺼리는 의사들을 공략할 최후의 수단으로 등장한 게 바로 간택 영업이다. 1·2차 병의원에서 간택 영업은 거의 절대적이다. 종합병원급에서는 약 자체의 효능이나 제약사 브랜드 파워 등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가 올 4월 단행한 약값 인하(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평균 14% 인하)도 영업사원들이 간택 영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소같이 뛰어도 월 표준 실적(보통 1인당 총 처방액 3000만~5000만원)을 맞추기 힘들어 한 명의 의사 처방이라도 더 따내야 하는 상황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리베이트 규제) 방향은 공감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이 정상적인 영업활동마저 위축시키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불리한 상황도 문제다. 다국적 제약사 국내 법인이 본사를 동원, 국내 의사들을 해외로 초청해 학술대회나 제품설명회를 열면서 리베이트를 제공하면 현실적으로 단속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등 관련 당국은 “복제약(제네릭)과 리베이트에 의존하는 업계 체질을 신약 연구·개발(R&D)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구성한 정부 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의 칼날은 더욱 매서워지고 있다. 최근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뽑힌 상위 제약사뿐 아니라 중소형 제약사가 적발되는 등 쌍벌제 시행 이후에도 리베이트 수수 관행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