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 구로공단의 중소기업 명광사. 뜨거운 용광로에서 구리가 녹은 물이 흘러나온다. 중고 구리 조각을 녹여 재활용하는 기업이다. 이곳에서 땀흘려 일하는 19세 젊은이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상경해 근무하던 이 앳된 청년의 머리에는 이제 서리가 내렸다. 그가 지금 삼동의 이이주 사장(61)이다.

충북 음성에 본사를 둔 삼동은 작년에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작년 국내 법인의 매출이 1조639억원에 달했다. 2010년의 8990억원에 비해 18.3% 늘어난 것이다.

이 회사의 음성공장에 들어서면 네모난 시루떡판 같은 전기동을 전기용해로에서 녹인 뒤 떡가래처럼 뽑아내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러 공정을 통해 이를 더 가늘게 뽑는다. 그 뒤 도료의 일종인 절연물질 바니시를 바르면 제품이 완성된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가는 구리선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는 특수절연코일과 에나멜선(winding wire) 등이다. 변압기나 모터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전기적 성능을 좋게 하기 위해 ‘무산소동 로드(Non-oxygen copper rod·산소를 제거한 얇고 긴 널빤지 형태의 구리판)’를 먼저 만든 뒤 이를 이용해 각종 코일을 제조한다.

이들 제품은 컨테이너에 실려 일본 동남아 유럽 등 27개국으로 수출된다. 거래처는 지멘스 ABB 도시바 미쓰비시 등 다국적기업들과 현대중공업 효성 일진전기 등 국내 변압기업체들이다. 이들 거래처에서 받은 감사장이 사무실 입구에 줄지어 걸려 있다. 이 사장은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수출로 일궈낸다”고 말했다.

이 사장의 학력은 남해수산고를 졸업한 게 전부다. 그가 창업한 것은 1977년. 삼동(三東)이라는 회사명은 자신이 태어난 남해군 삼동면에서 따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실습 차원에서 배를 탔지만 멀미를 심하게 하자 선생님이 “너는 뱃사람이 되긴 글렀다”며 “밥벌이는 뭍에 가서 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 뒤 지인의 소개로 서울 구로동 명광사에서 일한 게 평생의 진로를 결정했다. 이곳에서 일하다 창업을 결심했다. 이 사장은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는데 결혼한 뒤 평생진로를 고민하다 내 사업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성수공단 부근인 자양동에서 종업원 10여명으로 시작했다. 전 직장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서울 반대편에서 창업했고 제품도 겹치지 않도록 절연코일로 정했다. 소재만 구리라는 유사점이 있었을 뿐이다.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2차 오일쇼크 여파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어려움을 겪다 창업한 지 4년 만인 1981년 부도를 냈다. 이를 악물고 빚을 갚았고, 1990년 법인으로 전환해 재출발했다. 기술개발과 수출을 통해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2000년대 들어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구리값이 천정부지로 급등하자 2003년부터 3년여 동안 자금난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검은 머리가 은발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제조원가에서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이다. 구리는 현금을 주고 사야 하는데 제품을 만들어 판 뒤 대금을 회수하려면 몇 달이 걸렸다. 구리값이 폭등할 때는 충분한 자금력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비즈니스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거래처와의 신용이다. 특히 일부 외국기업들이 선급금을 줘 위기를 넘기는 데 도움을 줬다. 이 사장은 “어떤 외국업체는 자신도 넉넉하지 못한데 은행대출을 받아 100만달러를 먼저 줬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신용을 쌓은 게 힘이 된 것이다.

둘째, 차별화된 제품이다. 이 사장은 독일 기업과 기술 제휴해 연속전위권선(CTC·전기적 특성을 좋게 하기 위해 여러 가닥의 코일을 새끼줄처럼 꽈 만든 제품)을 국산화했다. 이를 개발해 변압기의 부피를 줄이면서 용량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무산소동 로드도 개발했다. 이 사장은 “구리 속의 산소는 열이 생길 때 해로운 작용을 하는데 무산소동은 산소를 거의 제로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발전소의 핵심기기인 터빈발전기 △송배전 변압기 △일반 모터 및 가전제품 △하이브리드 구동모터 등 자동차산업 △태양광을 비롯한 그린에너지 등 다양한 곳에 들어간다. 그는 돈을 벌면 기술개발과 공장 확장에 쏟아부었다.

셋째, 글로벌 시장 개척이다. 이 사장은 “내수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출에 적극 나섰다”고 말했다. 일본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및 미주 등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진출해 3개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2007년 테네시주, 2009년 오하이오주, 올해 상반기에는 조지아주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인수했다. 연속전위권선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이사장은 “미국 공장은 북미뿐 아니라 중남미 시장 개척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미국공장에는 350여명이 일하고 있다. 적극적인 시장개척 노력 덕분에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 회사는 1985년 싱가포르에 3만달러어치를 내보내면서 첫 수출 테이프를 끊었다. 10년 뒤인 1995년 1000만불 수출탑을 받았고 2006년 1억불탑, 2008년 2억불탑을 수상했다.

그의 꿈은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수출을 늘려가는 것이다. 지금도 1년에 절반가량은 해외출장을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동안 쌓인 대한항공의 마일리지만 200만마일이 넘는다. 이 사장은 “다른 항공사 것을 합치면 출장거리가 지구 100바퀴를 훨씬 넘을 것”이라며 “나이가 있어 출장은 조금씩 줄이겠지만 우리 회사의 글로벌 경영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손때 새카만 영어사전으로 해외 개척

이이주 삼동 사장은 몇 가지 불문율을 갖고 있다. 첫째, 해외 바이어들과 상담할 때 통역을 쓰지 않는 것. 그는 “일본 바이어와 상담할 때 통역을 썼더니 전문용어를 몰라 별 소용이 없었다”며 “어느 나라 바이어와도 영어로 직접 얘기한다”고 말했다.

영어 발음이 유창한 것은 아니지만 상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비결은 영어사전이다. 그는 늘 가죽 가방을 들고 다닌다. 무게가 족히 3~4㎏은 나간다. 그 안에는 각종 서류와 더불어 영어사전이 자리잡고 있다. 민중서림의 ‘포켓 영한·한영사전’이다. 손때가 잔뜩 묻어 옆면이 새카맣다. 틈나는 대로 이를 펴서 단어와 구문을 외운다. 이런 습관이 창업 이후 30여년간 지속됐다. 이 사장은 “바이어와 상담 중 잘 생각나지 않았던 단어는 호텔방에 들어와 반드시 찾아보고 크게 소리내 외쳐본다”고 말했다.

둘째,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회사 일도 바쁜데 다른 일에 시간 빼앗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 이외에는 취미가 없다. 그는 환갑 이전에는 골프채를 잡아본 적도 없다.

셋째, 외국인 근로자를 쓰지 않는다. 음성이나 문경 공장은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몇 차례 인사 담당 임원이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건의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국내에 실업자가 이렇게 많은데 무슨 외국인 근로자냐”며 “아무리 내국인을 구하기 어려워도 반드시 구해서 쓰라”고 지시했다. “우리 근로자들이 뜨거운 중동의 사막에서 일한 게 얼마나 됐다고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음성(충북)=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