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중국 이야기를 한국 영화감독·배우에 맡겨 흥행몰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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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리포트 특파원이 만난 사람 - 천웨이밍 중보미디어 대표
허진호 감독 '위험한 관계' 1만개 스크린 개봉
한국 영화인들 다양한 장르로 중국 시장 도전을
허진호 감독 '위험한 관계' 1만개 스크린 개봉
한국 영화인들 다양한 장르로 중국 시장 도전을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허진호 감독의 <외출>, 백동훈 김길형 감독의 <식객>. 감독도 다르고 장르도 상이한 이들 한국 영화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천웨이밍(陳偉明) 중보(中博)미디어 대표가 투자한 영화라는 점이다.
천 대표는 일찍부터 한국 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10여년 전인 2001년부터 다수의 한국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중국 영화를 한국시장에 배급해왔다.
올해는 허진호 감독과 장동건 장쯔이(章子怡) 장바이즈(張柏芝) 등 한·중의 대표적인 영화배우들을 기용해 <위험한 관계>를 제작했다. 2억위안(약 350억원)이 투자된 이 영화는 내달 중국 전역에서 개봉한다. 한ㆍ중 영화계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천 대표를 베이징 궈마오(國貿)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부동산업자에서 영화제작자로 변신을했나.
“우연히 <귀신이 온다>(2001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를 준비하던 중국의 장원(姜文) 감독을 알게 됐다. 그 영화에 투자하면서 영화산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당시에는 중국에 영화시장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영화시장 규모도 수천만위안 밖에 되지 않았다. 영화 주제도 대부분 이념문제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데다 일이 재미있다. ”
▷<귀신이 온다>는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지만 중국에서 개봉을 못해 큰 손실을 봤다.
“그 영화는 중국 정부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영화제에 참가하려면 사전에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정부가 영화 내용 중 많은 부분의 수정을 요구해왔다. 영화는 이미 심사 전에 칸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국내 심사를 통과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개봉을 포기하고 영화제에 참가했다. ”
▷중국 영화시장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나.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심사제도도 많이 변했고 영화관리자들도 개방적이고 선진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사실 <위험한 관계>도 <귀신이 온다>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었다. 칸영화제에 참석하려면 국내 심사를 거쳐야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부가 임시적으로 심사를 통과시켜주면서 영화제에 참석하게 해줬다. 최근 중국 영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것도 정부 영화관리자들이 ‘관리자’에서 ‘지지자’로 바뀐 덕분이다.”
▷한국 영화계와 유난히 친밀한 관계를 맺은 이유는.
“<귀신이 온다>가 문제가 된 이후 사실 정부로부터 주시를 받게 됐다. 당시에는 중국 내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기 어려웠다. 해외에서 사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0년부터 1년 정도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했다. 미국시장은 너무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가치관과 이데올로기가 너무 달랐다. 중ㆍ미 합작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일본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좀 특수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한국은 영화, 드라마가 꽃피는 시기였다. 더구나 한국과 중국은 유교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 가치관도 비슷했다. 한국은 젊고 훌륭한 감독들이 많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면서 허진호 곽재용 이창동 김기덕 등 여러 감독들과 교분을 쌓게 됐다.”
▷최근 <위험한 관계>를 완성했는데 양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 제작은 처음인가.
“정우성 씨가 출연한 <호우시절>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본래 30분짜리 단편영화로 기획됐으나 내용이 좋아 장편영화로 제작됐다. 중국과 한국의 영화 인력이 함께 영화를 만들수 있는지를 실험한 중요한 작업이었다. <위험한 관계>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호우시절>을 만든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호우시절>과 <위험한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호우시절>의 투자금은 2000만위안 밖에 안되지만 <위험한 관계>의 투자금은 2억위안이나 된다. 상업적 요소를 더 많이 고려해 <위험한 관계>를 만든 까닭이다.”
▷거액을 투자한 한ㆍ중 합작영화로 왜 <위험한 관계>를 선택했나.
“(원작인 18세기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의) 이야기 구조가 너무 완벽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사랑을 믿지않는 게 중국 젊은이들의 사랑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본다. 물질적이고 진심이 결여된 사랑에 대해 다같이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개봉 전략도 중요할텐데.
“국경절 휴일을 앞둔 다음달 27일에 중국 전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스크린 수가 1만개에 달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10월4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동남아와 호주 개봉도 예정돼 있다. 일본은 아직 미정이다. 사실 외국인 감독이 중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
▷어느 정도면 성공인가.
“최소 3억위안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표 한장당 가격이 평균 35위안 정도이니 약 1000만명의 관객이 봐야 한다.”
▷<위험한 관계> 이후 제작 중이거나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 영화는.
“곽재용 감독과 <모닝콜>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11월에 크랭크인에 들어간다. 이 영화 역시 중국 배우와 한국 배우를 기용할 예정이다. 누가 출연하는지에 대해서는 비밀이다.”
▷왜 허진호 감독과 곽재용 감독을 선택했나.
“허 감독과는 세 번이나 합작을 했다. 잘 알다시피 그는 예술영화를 많이 찍어 영화의 질이나 예술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런 훌륭한 감독이 상업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곽 감독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다. 그가 감독한 <엽기적인 그녀>는 아시아에서 크게 성공했다. 우리 영화도 <엽기적인 그녀>처럼 큰 성공을 했으면 좋겠다. 외국 감독을 불러 중국에서 중국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다. 이 도전이 성공하면 더 많은 외국 감독들이 중국으로 올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중국 감독들도 해외로 나가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한국 영화사들이 중국에 진출해 영화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면.
“단순히 시장 규모만 보고 한꺼번에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힘들 것이다. 중국 영화는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 중국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젊은이들은 중국의 현 상황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이 장점이 많다고 본다. 한국은 현대극을 아주 잘 만든다. 때문에 한국의 스태프들이 중국에 와서 중국의 얘기를 만드는 게 유리할 것 같다.”
천웨이밍 대표는 외출·식객 등 한국영화 투자…영웅·황후화 등 배급도
한국 영화시장에 첫 진출한 중국 영화제작자다. 중국에서는 제작자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샤먼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후 홍콩에서 부동산업과 무역업으로 돈을 벌었다. 다롄(大連)에서 경영 전문 케이블TV와 체육 전문 케이블TV를 운영하기도 했다.
친구의 권유로 우연한 기회에 장원 감독의 <귀신이 운다>에 투자하면서 영화제작자로 변신했다.
1997년 중보미디어를 창업하고 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영화계와 교분을 쌓았다. <영웅> <연인> <무극> <황후화> 등을 한국에 배급하고 많은 한국 영화에 투자했다. 한ㆍ중 합작드라마인 <북경 내사랑> <비천무> <리멤버> 등도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중국에서는 드라마인 <사랑의 기억> <영원은 얼마나 먼가> 등을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그가 창업한 중보미디어는 베이징대 산업문화연구소 등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10대 영화제작사’로 뽑히기도 했다. 중국 민영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영화제작 면허를 얻은 회사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