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L피자 사건의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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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은 생활경제부 기자 soul@hankyung.com
충남 서산에서 발생한 성폭행 여대생 자살 사건의 피의자가 여대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던 피자체인점 ‘L피자’ 가맹점주라는 사실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가맹점주들이 말못할 고통을 겪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피의자 신상을 모두 털어내 유포한 데 이어 L피자 본사와 가맹점에 대해서도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전국 30여명에 달하는 L피자 가맹점주들은 “얼굴도 모르는 한 명의 가맹점주가 L피자 전체의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렸다”며 “사건 이후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간판을 바꿔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가맹점주는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어디 가서 항변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며 괴로워했다. 가맹점주들은 사건 이후 “본사와 대책을 논의하려 해도 대표가 미국으로 떠나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표준화된 맛과 브랜드 이미지가 장점인 반면 L피자처럼 한 가맹점에서 문제가 터지면 다른 가맹점에도 도미노처럼 피해가 확산된다는 약점이 있다. 올초 채선당의 ‘임산부 폭행 논란’ 당시에도 전국 채선당 점포의 매출이 일제히 급감했었다. 경찰 수사 결과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지만 이미 훼손된 이미지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채선당 가맹점주들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지금도 예전만큼 매출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의 ‘인성’까지 일일이 점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L피자 사례는 애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본사의 사후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올 1월 L피자 가맹점을 개업한 성폭행 피의자는 평소에도 아르바이트생에 야한 농담을 던지고 추근댔다고 한다. 본사에서 현장을 정기적으로 방문, 아르바이트 직원의 애로사항을 듣는 등 매장 인력과 운영 실태를 적극 관리했다면 안타까운 사건을 막을 수 있진 않았을까.
윤희은 생활경제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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