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유족, 사망 원인 청와대에 재조사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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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 규명을 위해 장준하기념사업회와 유족이 사건 재조사와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요구서를 20일 청와대에 제출했다.
기념사업회는 요구서에서 “최근 장 선생의 묘소 이장 과정에서 유골을 37년 만에 처음 검사한 결과 타살 가능성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국가기관이 나서 즉각적인 재조사와 진상 규명에 착수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1975년 장 선생의 사망 직후 그 원인에 대해 ‘실족에 따른 추락사’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머리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 등 추락사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드러나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도 ‘타살이 의심되나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사업회는 또 “장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4·19 혁명의 선봉이었으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며 “이런 국가유공자의 사망 원인이 실체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면 이는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장 선생은 일제 강점기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53년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1975년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1일 장 선생 묘소 이장 과정에서 유골을 검시한 결과 두개골에서 지름 5~6㎝ 크기의 구멍이 확인됐다며 재차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기념사업회는 요구서에서 “최근 장 선생의 묘소 이장 과정에서 유골을 37년 만에 처음 검사한 결과 타살 가능성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국가기관이 나서 즉각적인 재조사와 진상 규명에 착수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1975년 장 선생의 사망 직후 그 원인에 대해 ‘실족에 따른 추락사’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머리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 등 추락사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드러나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도 ‘타살이 의심되나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사업회는 또 “장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4·19 혁명의 선봉이었으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며 “이런 국가유공자의 사망 원인이 실체조차 규명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면 이는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장 선생은 일제 강점기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53년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1975년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1일 장 선생 묘소 이장 과정에서 유골을 검시한 결과 두개골에서 지름 5~6㎝ 크기의 구멍이 확인됐다며 재차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