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소더버그가 2003년 리메이크해 유명해진 ‘오션스 일레븐’의 원작은 1960년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작품이다. 절묘한 팀워크의 친구 11명이 하룻밤 새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5곳을 턴다는 내용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배경 삼은 것은 카지노에 빠져 안 떠나려는 톱스타들을 한꺼번에 출연시키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랫 팩(rat pack)’으로 불린 프랭크 시내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랫팩은 ‘패거리, 범죄집단’이란 뜻의 속어인데, 원조는 1940~50년대 전설적 배우이자 술꾼인 험프리 보가트다. 보가트와 친구들이 밤새 술 마시고 들어오자 그의 아내 로런 바콜이 ‘갓뎀 랫팩’이라고 소리친 데서 유래했다. 나중엔 랫팩이 아예 보가트의 술친구모임 이름이 됐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범죄의 치밀한 준비와 실행과정에 초점을 맞춘 범죄영화를 케이퍼 무비(caper movie) 또는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로 분류한다. 케이퍼는 속어로 ‘범죄, 못된 장난’을 가리키고, 하이스트는 ‘강도, 강탈’이란 뜻인데 ‘hoist’(속어로 훔치다)가 어원이다.

케이퍼 무비의 전성기는 1960년대다. 스티브 매퀸,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년), 마이클 케인의 묵직한 연기가 돋보이는 ‘이탈리안 잡’(1969년) 등 걸작이 쏟아졌다. 2000년대 들어 모두 리메이크됐다. 1973년작 ‘스팅’은 사기의 고수와 신참이 치밀한 계획으로 비열한 상대조직에 복수하는 장르의 정석을 보여준다.

케이퍼 무비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첫째 계획단계에서 최고의 꾼들이 모이지만 타깃은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다. 둘째 실행단계에선 온갖 우여곡절을 겪지만 끝내 성공한다. 셋째 도주단계에선 반목, 배신이 벌어지지만 요즘에는 해피엔딩이 많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가 불꽃대결을 벌인 ‘히트’(1995년), 캐서린 제타 존스의 섹시 포복으로 유명한 ‘엔트랩먼트’(1999년), 스파이영화와 접목해 시너지를 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꿈을 훔친다는 기발한 설정의 ‘인셉션’(2011년) 등은 필수 관람 리스트에 넣을 만하다.

국내에선 낯선 케이퍼 무비지만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해 주목을 끈다, 그는 ‘범죄의 재구성’ ‘타짜’ 등 케이퍼 무비로 일관해왔고 부인이 운영하는 영화사 이름이 케이퍼필름일 정도로 한 우물을 팠다. 과거 1000만 영화처럼 민족 통일 반미 등의 심각한 코드 없이 순수 오락영화로 대박을 낸 게 고무적이다. 주위엔 온통 핏대 올리는 사람들 천지인데, 영화라도 맘 편히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