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제 음악 스승…오페라 지휘가 마지막 꿈, 요즘엔 베토벤에 빠져"
일흔 살 지휘자의 손에는 늘 낡디 낡은 악보가 들려 있다. 어떤 악보든 눈을 감고도 지휘할 법하지만 “세상에 거저 만들어지는 소리는 없다”고 말한다.
지휘를 맡은 오케스트라마다 세계 최정상급으로 만들어놓는 명장, 지휘대 위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순간까지 지휘를 멈추지 않았던 마에스트로, 마리스 얀손스다. 그가 오는 11월20일과 21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각각 베토벤 교향곡 2, 3번과 6, 7번을 연주한다.
13일(한국시간) 그가 머물고 있는 스위스의 별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고 있다”며 “다음달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연주할 곡들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지휘봉을 잡으면 두 가지 마법이 펼쳐진다. 하나는 어렵고 난해한 곡도 명쾌하고 쉬워진다. 다른 하나는 무명의 오케스트라도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마법의 비결에 대해 “끊임없는 공부와 소리에 대한 애정, 무엇보다 연주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버지는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뒤를 이어 1952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취임한 아르비드 얀손스다.
그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리가의 게토(유대인 집단거주지)에 홀로 숨어든 유대인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1956년 가족이 다시 모여 살게 되면서 러시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 피아노와 지휘를 공부했다. 빈 음악원에서 한스 스와로브스키를 사사하고, 잘츠부르크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지휘를 배웠다.
그를 ‘스타 지휘자’로 만든 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1979년부터 2002년까지 이 악단을 이끌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그는 “젊은 지휘자에게는 함께 소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신의 오케스트라가 절실히 필요한데 내겐 오슬로 필하모닉이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객원지휘자로도 활동했다. 1997년 3월 로린 마젤 후임으로 미국 피츠버그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맡아 7년간 활동했다.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비결은 두 가지예요. 단원들과 하나가 돼 소리에 집중하고 반복연습을 하는 것, 소리가 좋은 콘서트홀을 자주 경험하는 거죠. 빈 뮤지크페라인, 베를린필하모닉홀, 보스톤 심포니홀, 뉴욕 카네기홀 등은 제가 최고로 꼽는 공연장이에요.”
그는 전성기였던 1996년 4월 오슬로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마지막 소절을 지휘하다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그의 아버지도 1984년 연주회 도중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곡이 끝나기 7분 전이었는데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곡만은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가슴에는 지금도 전기 심장박동기가 삽입돼 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어떤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휘가 얼마나 격렬한 운동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하며 웃었다.
그는 2002년부터 이끌어온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6대 수석지휘자로, 2003년부터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휘자에게는 삶의 주기마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작곡가가 있다”며 “요즘은 베토벤에 꽂혔다”고 했다. 2010년 RCO와 내한했던 그는 “RCO가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리에 강하다면,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은 독일 특유의 깊고 강렬한, 생생한 소리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겐 아직 남은 꿈이 있다. 오페라를 지휘하는 것이다. “오페라에는 음악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무대 연출까지 담겨 있다. 내 손끝으로 그 모든 것을 움직이는 마법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