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은행의 신규 대출금리는 평균 연 5.70%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의 연 7.17%에 비해 1.47%포인트나 떨어졌다. 하지만 가계와 기업의 실제 채무상환 부담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5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대출금리는 올해 상반기 연 3.30%로 2007년 연 3.79% 이후 가장 높았고 지난해(연 1.76%)에 비해서는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명목금리는 떨어졌지만 물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실제 채무상환 부담이 늘어나고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부채디플레이션(부채디플레)’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부채디플레 국면에 본격 진입할 경우 일본처럼 장기 침체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까지 3%대 중반이던 국내 경제성장률은 이미 올해 1분기 2.8%, 2분기 2.4%로 낮아졌고 3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실정이다. 실질금리 상승으로 실제적인 채무 부담이 커지면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자산가격마저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고갈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는 부채디플레에 빠져 일본이 과거 20년간 겪었던 장기 불황의 초기 국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가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부동산 경기 부양책과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부채디플레의 함정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 가격 하락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8% 떨어졌다. 2010년(-2.9%) 이후 2년 만의 마이너스다.

가계부채도 위험 수위다. 올해 1분기 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911조4000억원에 달한다. 2009년 776조원에 비해 135조원 이상 늘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계부채와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채디플레이션

debt deflation. 물가 하락으로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상승, 채무상환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보유자산을 서둘러 매각하면서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현상.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설명하면서 만든 개념이다.

주용석/김유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