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신뢰가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한다. 나중에 원금과 이자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게 된다. 또한 돈을 빌릴 때도 지불하는 이자 수준이 적정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거래가 형성된다. 그런데 돈을 맡기고 빌리는 과정에서 믿음이 사라지면 남의 돈을 가지고 장사하는 금융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최근 시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쪽에서는 CD금리가 과도하게 높아 이자를 너무 많이 냈고, 이의 저변에는 분명히 금융회사 간 담합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한다.또 다른 한편에서는 CD 발행 및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시장에서 결정된 금리는 정상궤도를 이탈할 수 있으며, 그동안 CD금리가 높다 하더라도 예대마진은 계속 줄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욱이 최종 대출금리가 CD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되는 상황에서 굳이 CD금리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진행되면서 명확히 밝혀지겠지만, 시장의 불신이 확산됐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우선 금융에서 담합 등 불공정행위는 상당 기간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는데, 단순한 의혹이 초기에 이처럼 일파만파로 번져나가도 되는 것인가. 특히 신뢰를 먹고사는 금융에서 시장 참가자 상호 간에 불신이 생기면 그 여파는 상당하다. 전체 사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가 거래하는 시장에서 믿음과 신뢰가 깨질 때 금융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리보금리 조작으로 무리를 빚었던 바클레이스는 3년 이상의 조사과정을 거쳤다. 혐의를 잡아내기 위해 2200만건 이상의 서류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국내 CD시장은 글로벌 위기 이후 은행의 예대율 규제가 강화되면서 발행 물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은행 자금조달 평균금리인 코픽스(COFIX)가 등장하면서 거의 발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어떻게 상당 기간 기준금리로 사용됐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금융회사와 고객 간에 서로 주고받아야 할 금리는 사적 계약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당국의 개입이 과도한 것이 아닌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조직체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며, 금융 불공정행위에 대한 판단을 누가 맡을 것인가라는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안이 시장을 통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는 현상은 분명히 잘못됐다는 점이다. 특히 신뢰가 중요하고 전염성이 강한 금융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이는 신중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앞으로 충분한 조사 후 시시비비가 밝혀지면 그때 가서 과징금과 필요한 소송 등이 진행되는 것이 절차상 맞다.

또한 시장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금리는 대표성이 약하므로 조기에 대체돼야 한다. 앞으로 CD금리 대신 단기 코픽스를 사용할 예정이니 시장금리의 대표성 문제는 조만간 해소될 것이다. 다만 단기 코픽스 운영 과정에서 금리의 적정성에 대한 검토는 계속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떠오른 금융소비자 보호 이슈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금융 불공정행위에 대한 감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는 정부 조직체계 개편과 부처 간 상호 협의 과정이 요구되므로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CD금리 사태는 역설적으로 금융의 신뢰성과 금융혁신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더 돌이켜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보인다.

손상호 < 금융硏 선임연구위원 shsohn@kif.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