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계약문화에 익숙지 않은 편이다. 정이 많은 인정사회의 전통 탓인지, 돈을 빌리거나 거래를 할 때 “믿는 사이인데 뭘” 하면서 적당히 말로 하고 문서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당사자 간에 생각이 달라져 다툼이 생기고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옛말에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거짓말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나라는 고소와 소송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함부로 소장을 내는 남소(濫訴)의 경향마저 보인다. 일본과 비교해 보면, 형사고소 당한 사람 수는 67배나 많고, 인구 10만명당 인원으로 따지면 171배나 된다. 민사사건도 사건 기준으로 2배, 인구 10만명당 사건 수는 5배가 많은 실정이다.

일정한 사회에는 반드시 일정한 범죄가 있다는 형법학자의 정의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유난히 고소와 소송이 많아진 것은 걱정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 원인을 분석할 수 있지만, 우선 사회가 6·25전쟁을 겪고 고도 압축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인정을 베풀고 믿음을 지키는 미풍양속, 약속과 원칙을 존중하는 공동체 규범의식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진단된다.

더욱이 분쟁을 조정해주던 사회의 어른이 없어지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다툼이 생기면 우선 싸움을 거는 강퍅한 이기주의와 배금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법무부 등 정부 차원에서도 왜곡된 법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고소 풍조를 근절하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양보·타협할 일을 걸핏하면 검찰에 고소하고, 경제주체 간의 이해 분규도 수사기관에 고발부터 하는 것은 좋은 본보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솔선해 약속과 신뢰를 지키고 이를 확산시켜 우리 사회 공동체에 이른바 ‘신의 성실의 대원칙’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여기에 분쟁의 사전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전제가 우리에게 부족한 계약문화의 정착이다.

서로 믿는 사이라도 약속이나 거래내용은 반드시 문서로 작성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인증해둔다면 불필요한 분쟁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나라가 세운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증인 사무소에 가서 약속사실이나 계약내용을 공증해둔다면 소모적인 법적분쟁을 더욱 확실히 차단할 수 있다.

투명한 계약문화를 생활화하고 웃어른을 존중하며 사회지도층이 양보 타협에 솔선하는 일은 불필요한 고소와 소송을 줄여 ‘다툼이 많은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우리 모두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로마법의 격언대로 ‘신의와 성실’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는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다함께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김진환 <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zhkim@hmplaw.com >